목구멍이 포도청

입력 2011-01-20 10:20 수정 2011-09-30 22:31






  어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 “ 김치”좀 더 달라고 하자, 일행 중 한 인사가 핀잔 투로 “나는 주는 대로 그냥 먹는다.”며 점잖은 양반 행세를 하였다. “식당 종업원을 귀찮게 하지 마라”는 말로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음식점에서 추가 주문도 못하는 양반명색들만 있는 사회에서는 서비스업이 잘 발달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나는 무안하기도 하고 졸지에 쌍것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어 씁슬했다.
  하늘만 쳐다보던 농경시대에 배불리 먹을 수 없었던 탓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는 먹는 것과 관련된 속담이 유난히 많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한다.” 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였다. 양반이 점잖을 빼더라도 배가 고프면 다 헛일이고, 좋은 놀이도 배가 불러야만 비로소 흥이 난다는 뜻일 게다.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하여 먹는 행위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먹고 마시는 일에 큰 보람을 느끼고 취미로 삼는 나에게는 꼭 들어맞는 이야기다. 새해벽두에 벌어진 먹는 것과 관련된 삽화(揷話) 몇 가지를 들여다 보자



  # 서울 시내 두 개 유명대학의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엄동설한에 난데없는 해고 통보를 받고 어쩔 줄을 몰라 “살려 달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다. 학생과 교직원들이 등교하기 전에 교실과 사무실 등을 깨끗하게 정돈하여야 하기 때문에 새벽 첫 차를 타고 나와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 그분들의 임금은 월 70만원 남짓이라고 한다. 거기다 식대로 월 9,000원을 지급하는데, 일요일을 빼고 26일을 잡으면 하루 350원도 안 되는 셈이다. 상해나 자카르타의 으슥한 뒷골목도 아니고 서울의 대낮, 그것도 지성의 전당 상아탑에서 350원으로 어떻게 한 끼 식사를 때울 수 있다는 말인가? 식소사번(食少事煩) 즉, 힘들게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먹을 것은 없어 피곤하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 공사판 현장식당(함바집)과 관련하여 높은 인사들이 떳떳하지 못하게 관련되었다는 뉴스가 있다. 건축비용에 비하면 하찮을 것 같은 음식 값에서 무슨 비리가 있겠느냐는 사람도 있다. 하여간 현장식당 한 끼니에 대개 4,000원인데 여기서 이것저것 빼고 상납금까지 빼고 나면 야외에서 줄곧 육체노동을 하는 인부들에게 제대로 영양이 공급될지 의문이 간다. 만약 누군가 그 코묻은 돈을 잘라서 받았다면 그 돈은 삼복더위 뙤약볕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거나, 한겨울 혹한에 떨며 중노동을 하는 힘겨운 사람들에게서 거둔 것과 진배없다. 꼬리표 없는 돈을 받아 삼켜더라도 힘겨운 사람들의 돈을 받는 것은 그만큼 더 아픈 일이 된다. 섹스피어의 "4대 비극"을 보면 예외 없이 "절망에 빠진 자를 유혹하지 마라"고 경고하였다.



  # 학교 급식과 관련하여 서울시 행정당국과 시의회가 갈등과 대립에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나라의 미래를 걸머질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어른들이 영역 다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무엇인가 모르게 염려되고 안타깝다는 느낌이 든다.

  지금 우리가 지향하는 있는 선진국이 되려면, 깊고 넓은 복지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 복지에도 순서가 있어서 절대빈곤층 그 다음 근로빈곤 계층, 저소득층의 차례로 풀어나가야 한다. 미래지향적 비용(cost)과 편익(benefit)를 생각하기에 앞서 눈앞의 인기영합에 골몰하는 것도 염려된다. 그리고 자기의견과 맞지 않는다고 하여 다짜고짜 상대방을 “포풀리즘”으로 몰아세우는 일도 불안하다. 어쨌든 누군가가 지금은 설령 잘못 판단하였더라도 사익이 아닌 공익의 바탕에서 논의를 거듭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고, 그 인사들도 훌륭한 재목으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기대할 뿐이다.



  우리경제가 고속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도덕과 원칙이 손상되고,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인간의 존엄성이 유보되는 사태가 벌어졌어도 “살기 좋은 나라”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참고 견뎌야 한다고 들어왔다.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배가 불러야 된다는 즉,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현실적 명분(?) 때문이었다. 그런데 눈부신 경제기적을 이루고 많은 나라의 귀감이 되었다고 하는 오늘날 비록 막노동이라도 해서 열심히 살려는 사람들에게 칼로리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또 그 “밥 문제” 때문에 높은 인사들이 끝장을 낼 것처럼 으르렁거리고, 또 잡혀가기 까지 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까?
                                                                easynomics@naver.com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읽을수 있습니다.
                                        http://easynomics.blog.me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가상통화의 미래,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현대판 튤립 투기이며 화폐로 인정받지 못할 것 782명 59%
  • 결제·지급 수단으로 인정받아 은행 대체할 것 534명 41%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