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서양 연안 리우(Rio)에서 남태평양 연안 리마(Lima)로 갈 때 있었던 일이다. 비행기가 이륙할 즈음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찌푸린 날씨로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었다. 그처럼 시계가 전혀 없는 날씨에 어떻게 비행기를 띄우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행기에서 내리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지 못하였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멀리 조국 땅에 있는 자식들 얼굴이 금새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순간 사위가 환해졌다. 발아래로는 새털처럼 부드러워 보이는 뭉게구름 융단이 멀리 멀리 펼쳐져 있었다. 비행기가 짙은 먹구름의 띠를 뚫고 올라 간 것이다. 어이하여 세상이 이리도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얼마 전 바람 부는 어느 날 자카르타에서 타이페이로 가는 “가루다” 항공기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곳 공항 활주로는 바다에 붙어 있어 기체가 뜨면서 바로 푸른 파도 위를 나르게 되어 있었다. 쉴 새 없이 출렁이는 검푸른 파도를 보면서 저 "끓고 넘치는 바다"가 편안하게 쉴 적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해 보았다. 인간사 고해(苦海)라는 상념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런데 비행고도가 높아지면서 물결이 차츰 잔잔해 보이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호수의 물결처럼 은빛인지 금빛인지 모르게 바다는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바닷물은 그 자리에서 그냥 그대로 출렁거리는데 내 망막의 영상만이 달라진 것이다. “그들은 주인 자리에, 나는 바람 같은 몸”이란 말인가?
  
  생각해보자. 여객기가 하늘 높이 떠 봤자 얼마나 높이 올라가겠는가? 기껏해야 10km 내외다. 지구의 크기에 견주면 거북이 높이뛰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조금만 멀리서 본다면 그 두려운 안개도 헤치고, 그 가쁜 물결도 달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시야를 조금만 멀리, 조금만 길게 한다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번번이 닥치게 되는 미명(未明)과 번뇌(煩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렸다. 그래야 자기 자신도 바로 보고, 사물도 바로 볼 수 있는 길이다.

  생각건대, 이 세상에 산적한 경제적 난제들은 거의 대부분이 단기업적주의로 말미암아 파생된 것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욕심 많은 인간들의 조바심이 그 많은 불확실성과 위험을 잉태한다. 조금만 멀리 보면 답이 보이는데도 스스로 저지르는 근시안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져 앞을 가리지 못한다.
  누가 나에게 “금융시장”에 대하여 묻는다면 “금 안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한 발 물러나서도 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금융시장도 어떤 충격에 의하여 균형을 이탈했더라도 나중에는 제자리로 복원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바심을 내며 갈팡질팡하고 몰려다니다가는 붙잡아야 할 때와 놔야 할 때를 거꾸로 하다가 낭패 보기 쉽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도 아무 것도 모르면서, 풀잎에 올라 우쭐대는 메뚜기를 우습게 보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앞가림도 못하면서, 금이빨 자랑하는 돼지를 가엽다고 생각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업신여긴 일이 있으면서도, 완장 얻어차고 거들먹거리는 앞잡이를 경멸하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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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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