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 타령

입력 2010-11-03 09:00 수정 2010-11-09 09:24

  며칠 전 저녁 먹는 자리에서 한 친구가 지조 이야기를 하였다. 다른 친구는 요즘 세상에 쓸데없이 그 무슨 지조 타령을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지조의 사전적 의미는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아니하고 지켜 나가는 꿋꿋한 의지 또는 그런 기개를 의미한다.
  항심(恒心) 즉 언제나 떳떳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데서 지조는 시작된다. 허기와 목마름의 고통을 참아야 하고, 회유와 협박도 맞서 견뎌내야 지조(志操)를 지킬 수 있다. 간디(Mohandas K Gandhi)는 “추위를 피하거나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은 차츰 춥고 더운 것에 대한 저항을 잃게 되고, 그만큼 약한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 세상 살다보면 무더위에 늘어질 때도 있는가 하면, 찬바람이 뼈 속 깊이 스며들 때도 있다. 세상은 쉬지 않고 바뀌는데 생각이 올곧지 못하면 갈피를 잡지 못하여 하찮은 것에 대한 욕망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게 된다.  
  시인 조지훈은 “을사오적은 나라를 팔아먹어도 36년의 선견지명(?)은 가졌었다.”고 일갈하였다. 일제가 망하기 직전 최후발악을 할 즈음에 단 몇 년, 몇 달을 내다보지 못하고 일제의 충성스런 신하가 되어 후세에 오명을 남긴 자들을 비웃는 이야기다. 실제로 “천황을 위한 기도 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면 왜왕을 위하여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였다는 어느 유명 소설가는 “일본이 그리 쉽게 망할 줄 몰랐다”며 자신의 재빠른 판단(?)을 탓하였다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할 씁쓸한 말을 남겼다.
   먼 생각이야말로 지조를 지키는 기본바탕이 된다. 조금씩만 더 멀리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미래를 꿈꾸는 "젊은 사자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 극심한 가난은 뜻하지 않게 사람들을 추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간단히 생각해 보자. 공부 잘하는 자식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부모가 남의 눈치 살피지 않고 소신껏 살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사람들의 자부심을 구겨버리는 절대빈곤은 대부분 과소비에서 비롯된다. 낭비하는 습관이 생기면 벗어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분에 넘치게 살려면 무리한 욕심을 내야하고 비굴한 행동도 하여야 한다. 자존심도 지키고 이것저것 다 챙기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느냐? 채근담에 보면 “얼음처럼 맑고 옥같이 깨끗한 사람은 명아주 먹는 입이나 비름 먹는 창자를 가졌지만, 비단옷 입고 쌀밥 먹는 사람일수록 종노릇 시늉을 달게 여긴다.”는 무서운 경구가 있다. 종노릇 쉽게 하는 인사들일수록 사정이 바뀌면 더 으스대고, 더 쥐어 짜고, 더 거들먹거리는 작태를 보이기 마련이다. 노예들의 습성이 바로 그렇다.
  근검절약은 지조를 잃지 않게 하는 필요조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 공자 같은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어느 누군들 선비처럼 행동하였고, 지조를 지켰다고 뽐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밥풀떼기를 가지고 아귀다툼을 하다가는 결국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할 수 밖에 없다. 평소 의리를 외치고 신념을 지껄이던 인사들이 이해관계가 걸리면 원칙이고 뭐고 일순간에 헌신짝처럼 내 던지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눈 앞에 이익에 급급하여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다,  살아가면서 때때로 손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탐욕은 지조도 잃고 사람도 망치고 결국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는 평범한 이치를 사람들은 어이하여 다 망가진 다음에 깨닫는 것일까?

  그 험난한 역사가 없었더라면 그들이 변절자로 낙인찍히는 안타까운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태평성대에 좋은 자리에 앉아서 점잖게 행동하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울퉁불퉁한 과거를 가진 나라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곧게 살기가 쉽지 않았기에 지조를 지키는 일은 그만큼 빛나는 일이다, 생각건대, 벼슬을 거머쥐거나 떼돈을 움켜쥐고 갈팡질팡하기보다 소시민으로 지조를 지키며 사는 일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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