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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연방은행

  독일은 인구 산업 행정 등 모든 기능에서 나라 전체가 골고루 분산되어 발전하였다. 이는 산악지대가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이 평야로 되어 있어서 지형적 특성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웃 프랑스 등과 전쟁을 많이 하다 보니 탄력적 국가 방어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도시 기능을 분산시키고 균형적으로 발전시켜야 했었다. 만약 인구나 산업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을 공격당하면 나라 전체의 기능이 순식간에 마비되기 쉽다. 그러나 도시가 분산되어 있으면 어느 한 도시가 함몰되더라도 다른 곳에서 전선을 재구축하여 빼앗긴 땅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전략이다.

  경제사회에서도 중소기업이 골고루 그리고 강하게 발전하면 설사 대외적 충격이 오더라도 이를 무리 없이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공룡기업 몇 개가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다가 낭패를 당하면 국민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우리는 ’08 세계 금융위기에도 독일이 가장 충격을 덜 받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쏠리거나 몰리면 반드시 문제를 야기하기 마련이다. 악동들이 몰려다니면 조직폭력배가 되거나 그  하수인이 되기 십상이고, 돈이 한 곳으로 뭉치면 나라경제가 위태롭게 되고, 권력이 쏠리면 인권이 유린되고 부패가 창궐하게 되는 일은 어느 세계에서나 반복되어왔다.

  독일하면 나의 뇌리에는 거의 언제나 세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 먼저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가에서 1919년 새로 태어난 바이마르 공화국이 제정한 역사상 가장 이상적이라는 ‘바이마르 헌법’이다. 그러나 경제를 살린다고 돈을 마구 찍어내자 화폐가치가 바람 부는 초겨울 낙엽같이 흩날리게 되었다. 이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사회는 혼란에 휩싸이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무너져 그들이 꿈꾸던 그 이상향은 물거품이 되었다.

  # 그 와중에서 정권을 잡은 제3제국의 악령도 생각난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당시 독일은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며 철학이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그런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쉽사리 집단광기에 빠져 날뛰었다는 말인가? 중우정치는 이 세상 어디서든지 언제나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인지 모른다.

  # 제3제국 패망 후에 독일연방은행(Bundesbank)은 물가안정에 최우선가치를 두고 진력하였다. 그 결과 마르크화는 세계적으로 화폐가치 “안정의 상징”이 되었다. 한 때 초 인플레이션의 심벌이었던 독일이 혹독한 인플레이션의 해악을 체험한 후에 “인플레이션 화이터”의 대명사가 된 셈이다.

  1950년대 이후 독일연방은행은 다른 어떤 나라의 중앙은행보다도 물가안정 목표를 달성하는데 전력을 기우렸다. “라인 강의 기적”이 물가안정의 바탕에서 이루어졌기에 독일경제는 불균형 성장 같은 부작용 없이 성장해왔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도 독일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건강한 경제 체질을 가지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다.

  또 지금까지 2조 마르크 정도로 추정되는 천문학적 통일비용을 지출하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통일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그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큰 부작용 없이통일의 불확실성을 극복한 것도 독일연방은행의 흔들리지 않는 물가안정 노력 때문이라고 판단되고 있다. 유럽통화동맹이 결실을 맺어 유로화의 등장이 가능했던 것도 독일연방은행의 화폐가치 안정 노력이 컸기에 가능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독일의 통화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분데스방크가 독일국민들로부터 이해와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중앙은행의 정책목표가 건강하고 개방된 사회에 잘 설명되고 논의되면 될수록 그 목표는 더 잘 달성될 것이다”라고 마쉬(D. Marsh)는 지적하고 있다. 연방은행 고위직들이 정부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 대신에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를 구했기 때문에 서둘러 가자는 정치권과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기내에서 제공하는 신문(FT)에는 “안정의 상징에 드리운 그림자(shadow over a symbol of stability)라는 특집 기사가 실렸다. 남유럽 사태로 독일연방은행의 맥을 이어 받은 유럽중앙은행(ECB)의 앞길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화폐가치의 안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차츰 차츰 극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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