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이 뒤 덮인 알프스 산위를 지나 오스트리아 국경 지대로 들어섰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시보다는 온통 숲과 호수가 보인다. 서유럽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도 숲을 가꾸고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우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제한 속도로 달려도 되는 아우토반의 연장선상에 있는 고속도로를 상공에서 보면 마치 숲속의 오솔길처럼 보인다. 실제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깊은 삼림지대를 지나가는 듯 아늑한 느낌이 든다. 

  빈의 한국식당에서 모처럼 맛있는 저녁을 먹고 도나우 강가 호텔에 짐을 풀었다.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밤을 지나는 강물소리가 왈츠 리듬으로 귓전을 울린다. 돌부리를 울리며 흐르는 작은 시내나 이구아수폭포의 굉음이나 모든 물소리는 한 결 같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유럽 내륙은 어디서나 숲이 울창하여 그 숲이 품고 있는 저수량이 막대하여 강이 마를 수가 없다고 한다. 우기나 건기의 구분도 거의 없어 사계절 강수량 차이가 크지 않아 수위가 거의 일정하고 유속도 빠른 편이어서 물이 썩을 새가 없다는 이야기다.

  도나우 강변은 어디나 예외 없이 숲이 울창하다. 바지선이 다니기는 하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살리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왈츠의 왕 요한슈트라우스의 "빈 숲속의 이야기" 의 흥겨운 선율은 공원 숲속뿐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어디에서나 눈으로도 마음속으로 들을 수 있는 셈이다. 도시의 무려 3배나 가량 되는 “빈 숲”이 빈을 에워싸고 있다고 한다.

  수 백 년 동안 유럽을 움직인 합스부르크 왕조가 쌍아올린 저 빛나는 왕궁이나 찬란한 박물관보다 이 "상쾌한 숲" 그리고 "유쾌하게 흐르는 강"이 나는 더 부럽다. 숲은 도시와 도시의 완충작용, 대기정화 뿐만 아니라 사람들 마음의 정화작용까지 한다. 숲에 들어가기만 하면 어찌하여 행복감에 싸이게 되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세상 찌든 때가 벗겨지고 생기가 나고 활력이 솟는가?

최근 핀란드 과학자가 숲에서 나오는 음이온과 같은 물질은 항암작용을 하여 암 예방효과와 치료효과가 있음을 증명하였다고 한다. 10여 년 전 정든 직장을 잃은 나는 출근하듯 거의 매일 북한산에 오르다보니 건강이 최고조에 이르렀었다. 당시 칼바위 능선에서 쉬며 어떤 장년신사와 얘기를 나눴다. 그는 병원에서 회생불가 판정을 받고 기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거기서도 희망이 없자, 마지막으로 죽을힘을 다하여 산과 숲을 찾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을 회복하였다고 한다.

숲을 고층빌딩으로 바꾸는 데는 넉넉잡고 3년 정도 걸리지만, 고층 빌딩을 숲으로 가꾸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려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야금야금 쪼그라드는 서울의 그린벨트가 아쉽고 안타깝다. 지금부터라도 도심의 여기저기 낡은 집들을 차츰 사들여 하나씩 오두막 공원, 쌈지 숲을 조성해가면 좋겠다는 망상에 젖어 본다. 시민들이 편하게 숨 쉬고 휴식을 취할 쉼터와 녹지를 만들어 간다면 그 지역의 가치도 순식간에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녹지를 조성하는데 공헌한 사람의 이름도 거기에 새겨 놓자. 그리하여 그들에게 돈보다 긴 명예를 오래오래 남기게 하는 영광을 주면 어떨까?

1,8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도시 빈은 15세기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8세기에 들어 예술의 꽃봉오리를 피우며 음악의 도시가 되고, 왈츠의 고향이 되었다. 숲이 잘 보존되어 있듯이 중세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옛 건축물들도 잘 보존되어 있어 저 유명한 여름궁전, 겨울궁전이 아니라도 도처에 볼거리가 널려 있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새로 지은 아파트보다는 수 백 년 된 옛 주거지에서 사는 것을 더 선호하고 또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낀다고 한다. 아마도 옛날 건물들이 그만큼 편하기도 하고, 지킬 가치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지킬 것은 지키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는 것이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길이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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