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 이야기 (1) - 환율주권

입력 2010-04-01 09:00 수정 2010-04-02 09:25


  미시간 주립대 방문객으로 있었던 ‘93년 원화의 달러환율이 800원대에서 이듬해에는 700원대로 하락하였다. 원화가 오르는 바람에 체제비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월급으로 남쪽 땅끝 “키웨스트”로 자동차 여행도 하고, 머나먼 “엘로 스톤” 공원의 간헐천(geyser)도구경하였다. 
   ‘97년 나와 똑 같은 과정을 거친 한 친구는 원화가 맥없이 떨어지는 바람에, 즉 환율이 연초 840원대에서 연말에는 1,960원대로 올라, 생활비도 모자라 쩔쩔매었다고 한다. 그 꼬이고 골치 아팠던 환율 때문에 모처럼의 해외생활 여유를 앗긴 셈이다.

  그 당시 나는 우리나라 원화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인으로서 자부심도 높아졌다. 반대로 내 친구는 원화  가치 추락에 따라 생활비 걱정을 하며 고생을 하였다.  윤택한 삶도, 그리고 쪼들리는 가계도 때때로는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국가와 사회 환경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나는 (지금과는 다른 의미에서) "환율주권" 강국을 체험하였고, 그 친구는 “환율주권” 약체국의 설음을 경험한 셈이다. 

  며칠 전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09년 국민계정을 보면 국가 간 환율의 미스터리 아닌 미스터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난 해 우리나라는 대부분 다른 나라의 마이너스 성장과는 달리 1인당 명목 국민소득(GNI)은 전년대비 21,275천원에서 21,923천원으로 3.04% 상승하였다. 그런데 달라 베이스로는 오히려 19,296달러에서 17,175달러로 떨어져 자그마치 △10.99%나 크게 하락했다. 달러 표시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지금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09년 한국경제의 성적표를 보면 극심한 내수부족 상황에서도 수출이 호조되어 원화 베이스로 마이너스 성장을 면하였다. 자료를 보면 내수의 성장기여도는 △3.8%p였으나, 수출의 성장기여도는 4.0%p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원화의 대달러 환율은 13.6% 상승하고, GDP 디플레이터 상승률은 3.4%(소비자 물가 2.8%)에 달하였다.

  이 관계를 들여다보면, 소비수요 감소 국내투자 감소 등 내수부족에도 불구하고,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가격경쟁력 증대로) 수출산업이 호조를 보여 성장을 주도하였다. 그 대신 소비자들은 수입물가 상승분만큼 비싼 값을 지불하여 그만큼 가계에 부담이 되었다.
  쉴 새 없이 변하는 환율은 같은 경제체제 안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경제사회에는 공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인체에 비유하여 금리가 경제사회의 혈압이라면 환율은 체력을 표상한다.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할 수 있고,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운동도 꾸준히 할 수 있다.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환율도 금리처럼 경제현상을 적정하게 반영하고, 반영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환율은 초단기적으로는 국제경제, 국제정치 상황변화에 따라 쉬지 않고 변동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그 나라의 생산성 같은 국가경쟁력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위험관리 차원에서 환율의 변동을 냉철하게 관찰하여야 하지만,  외환시장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성장동력 같은 것을 살피며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예컨대, 미국의 쌓여가는 부채를 보면 달러화가 과대평가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자. 아시아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액이 5조 달러를 초과하였는데 그 중 80% 정도가 달러 관련 채권이라고 가정하면, 달러화가 약 20% 정도만 평가 절하되어도 미국은 아시아에서 약 8천억 달러의 빚을 탕감 받는 셈이다.
  그리고 유로화의 경우, 생산성 향상보다는 고용불안 해소를 더 중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경쟁력 확대에 치열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스, 스페인, 이태리 등 여러 나라가 생산성 향상보다 더 빠른 소비 확대로 가계나 정부가 빚더미에 앉게 되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후생과 복지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환율이 어쩌면 국가경쟁력의 결승점이 되기도 하지만, 가격경쟁력을 중시하는 환경에서는 그 출발선이 되기도 한다. 결승점과 출발선, 어느 것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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