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선행(善行)은, 선행(先行)입니다!

소아마비를 앓는 시카고의 한 아이가 오스트리아의 로렌즈박사를 초청해 치료를 받아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소식이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년도 같은 병을 앓고 있었으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로렌즈박사가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 이 소년의 집에 잠시 쉬기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로렌즈박사인 줄 몰랐던 소년의 어머니는 냉대하며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이 어머니는 자신이 쫓아낸 사람이 로렌즈박사였음을 알고, 가슴을 쳤습니다.

 한 부자가 불만에 찬 소리로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을 때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했는데도 왜 나를 수전노라고 비난하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친구가 돼지와 암소이야기를 했습니다. “돼지가 암소에게 불평했지. 나는 사람들에게 베이컨과 햄, 심지어 발과 털까지도 제공해. 그런데 사람들은 왜 암소 너를 더 좋아하지? 암소가 말했네. 그건 나는 살아 있을 때도 유익한 것을 주기 때문 일거야.”

 은평구 수색동의 허름한 단독주택, ‘사랑방’이란 문패가 보입니다. 환경미화원 이모씨가 가족처럼 돌보는 3명의 장애인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주변에서 이씨는 ‘두 집 살림’하는 환경미화원으로 통합니다. 부인과 자녀들이 사는 집과, ‘사랑방’문패가 달린 집. 네 식구가 함께 도란도란 살아도 누가 뭐랄 사람 없는데, 몸이 불편한 ‘사랑방’식구들을 물심양면으로 챙기는 선행(善行)을 미루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성 속엔 ‘선행(善行)’이라는 DNA가 있습니다. 나뭇가지처럼 말라서 죽어가는 극빈국의 굶주린 아이들, 가난과 희귀병으로 슬픔에 빠진 가정, 자연재해의 고통을 겪는 이웃을 보면 마음속으로 도움을 다짐해 봅니다. 그런데 이 다짐이 실행으로 옮겨지는 게 쉽지 않습니다. 마음과 달리 내 형편이 나아진 다음으로 미루게 되는 게 다반사입니다.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단지 능력이 될 때까지 미루는 것이라고 합리화시키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마음까지 라지만, 마음에서 손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게 먼 것 같습니다. 벼르고 미루다 보면 희미해지는 게 마음입니다. ‘선행(善行)’은 ‘선행(先行)’될 때 더 가치 있는 거 아닐까요. 지금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에게 절실한 때입니다. 선행을 베풀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행여 아주 안하는 것보다는, 늦게 라도 하는 게 더 낫긴 합니다만.

<김윤숙 coool66@daum.net>

공감소통연구원 대표, 대전혜천대학 겸임교수로 활동중이며, '행복 인생 만들기'란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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