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전화'가 '진화'할 때.

부모님이 ‘얼리 어답터’기질이 있으셨는지, 우리 집은 크게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음에도 시골동네에서는 드물게 일찍 가전제품을 들여 놓았습니다. 네 다리를 곧게 뻗은 잘생긴 ‘흑백TV’를 들여오던 날부터, 저녁시간 우리 집 마루는 동네 아이들과 아줌마들 차지가 됐습니다. 저는 몰려드는 아이들 중에 친한 친구를 좋은 자리에 앉혀 주며, TV가진 유세도 좀 떨었습니다. 엄마도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마루를 청소하시면서 귀찮다는 말씀은 하셨지만, 동네에 몇 안 되는 TV자랑이 싫지는 않은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TV보급이 얼마나 급속도로 번지는지, 저의 유세와 엄마의 자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일찍 들여 놓은 냉장고 덕에, 여름철 끼니마다 깊은 우물에서 김치통을 끌어 올려야 했던 수고도 놓게 됐습니다. 얼음공장으로 얼음을 사러가지 않아도 아무 때나 시원한 수박화채를 먹을 수도 있게 됐고요. 처음엔 얼음을 얻으러 오거나, 김치를 냉장고에 보관해 주기를 부탁하는 이웃도 있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빠른 경제발전의 속도만큼 이웃들도 다투어 냉장고를 들여 놓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는 TV나 냉장고의 재미와 유용함과는 달리, 굳이 일찍 들여 놓지 않아도 될 텐데 엄마는 전화조차도 남보다 앞서 가셨습니다. 쌀 한 톨 조차 아끼시던 분이 어떻게 그런 배짱을 가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잠든 것 같은 전화기가 설치되었지만, 서울 친척들 빼고는 딱히 전화할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 집이 장사하는 집도 아니었고, 전화가 있는 집이 별로 없었을 때니까요. 가끔 먼데서 걸려 오는 이웃집 전화심부름이 귀찮아 질 무렵, 전화도 점점 가정의 필수품이 되어갔습니다.

 지금은 전화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걸어 다니는 ‘멀티전화기(스마트폰)’도 너나 할 것 없이 갖고 다닙니다. 단지 통화만 하는 게 아니라 얼굴도 보고, 컴퓨터 역할도 하고, 사진도 보내주고, 심심하지 않게 친구도 되어줍니다. 수 십 명의 친구들과 동시에 얘기도 주고받고, 행복한 순간들을 찍어 올려놓은 걸 보며 함께 행복 해 하기도 합니다. 이젠 전화가 주는 유익함이, TV나 냉장고에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화가 우리를 피곤하게도 하고 아프게도 합니다. 수 없이 걸려오는 판촉전화와 메시지, 무례하게 울려대는 벨소리와 통화소리, 보이스 피싱의 덫. 사람과 눈 맞추며 이야기하기보다 기계에 눈 맞추며 잠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중독성. 안타깝게도 지난해엔 욕설로 도배된 카톡의 내용 때문에 자살하는, 가슴 아픈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얻는 전화의 편리함 보다 고약함이 더 커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걸음마 떼고 말 배우면서 부터 함께 하는 ‘전화’, 괜찮은 문화와 예절로 자리 잡도록 ‘진화(進化)’하는 거 보고 싶습니다.

<김윤숙coool66@daum.net>

공감소통연구원 대표, 대전혜천대학 겸임교수로 활동중이며, '행복 인생 만들기'란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