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안 통해도, 말 잘듣는 남자!

입력 2013-01-07 10:36 수정 2013-01-07 10:36


항상 문제는 남편에게서 시작됩니다. 새해 첫날, 뽀얀 사골국물에 만두와 흰 쌀떡을 넣고 끓인 떡국으로 늦은 아침을 먹었습니다. 남편이 식사 중에 새해 덕담이라고 딸에게 한 말 끝에, ‘올해는 살 좀 빼라’는 말이 화근이 됐습니다. 떡국을 맛나게 먹던 딸이 굳은 얼굴로 숟가락을 놓고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리더군요. 잘해보자고 한 게 분위기만 어색해 졌습니다.



 딸 방으로 들어가 보니,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로 침대에 누워있습니다. 마저 먹으라는 말에 “살 빼야하니까, 안 먹어!”라며 돌아눕습니다. 어느새 남편이 들어와 “아빠가 없는 말 했냐?”라며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한창 외모에 예민할 나이라서 그런지 외모에 관한 얘기는 딸을 끓게 하나 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애 무서워서 말도 맘대로 못하겠다고 넋두리를 합니다.



 당연히 말은 맘대로 하는 거 아니라고 남편에게 말해줬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고요. 남편은 항상 말끝에 상대방의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해 주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처음에는 칭찬으로 시작하다가도 끝은 충고로 끝납니다. 그러니 저와 딸에게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합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토라지는 우리를 보며 여자들과는 말이 안 통한다고 애통해 합니다.



 딸도 자신이 살을 빼야 하는 상태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노력도 해 보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요. 빠지지 않는 살 때문에 본인도 속상한데 아빠가 콕 찔러 말하니 속이 쓰리답니다. 그것도 맛있게 떡국을 먹는 중에 그랬으니 말이지요. 소통능력이 부족한 남편 덕에 딸과의 거리감도 늘어나고, 남긴 떡국을 처리하느라 음식물쓰레기 양도 늘어났습니다.


 결국, 저녁식탁에 다시 둘러앉았지만 콜드한 공기가 흘렀습니다. 실제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공감과 소통능력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는 모습을 이해 못할 눈으로 보는 게 남자들이죠. 그 산 증인으로 앉아있는 남편을 보니 안 돼 보입니다. 그러니 제가 옆에서 도와줄 수밖에요.



 저녁을 먹고 남편과 산책을 하며 말을 나눴습니다.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고 고치려고 하는 부분을 지적하는 건, 충고가 아니라 비난으로 들린다. 진짜 딸이 살을 빼기 원하면, 같이 운동을 가자고 권유하거나, 살 빠지는데 좋다는 보이차라도 사주면 좋아 할 거다’ 뭐 이런 말이었습니다. 다음날, 외출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손에 꾸러미가 들려있었습니다. 예쁘게 포장된 보이차 한통.



 이 남자, 소통능력은 떨어져도 말은 잘 듣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삽니다.

<김윤숙 coool66@daum.net>
공감소통연구원 대표, 대전혜천대학 겸임교수로 활동중이며, '행복 인생 만들기'란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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