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부끄럽게 느꼈던 아버지의 직업

 우리는 살다보면 누구나 인생이란 게 ‘찰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른이 되어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식을 갖게 되는 때가 가장 크게 성장한다. 내가 쓴 책 중에 ‘30대, 당신의 로드맵을 그려라’라는 것이 있다. 인생을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로드맵’을 그리는 것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행동을 하느냐는 그 사람의 종착점을 다르게 만든다. 특히 아버지의 역할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내 자식에게 어떤 유산을 남겨줄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아버지의 직업은 운전사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결국엔 ‘운전사’보다 ‘회사원’이라고 쓰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럽게 느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왜 운전사가 되셨느냐?’고 대뜸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원래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가고 싶었으나 집안 사정상 갈 수 없어 공군에 지원했고 그때 헌병대에 근무했다고 하셨다. 그때 보여준 공군 헌병대의 사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빛바랜 베레모 속의 아버지는 옛날 영화에 나오는 장교 같았다. 아버지는 제대 후 결혼했고 농사를 지었는데, 그것이 싫어서 서울로 오면서 운전대를 잡으셨다고 한다. 우리네 보통 아버지들이 그렇듯이 직업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운전을 한 번도 가르쳐 주신 적이 없다. 30년 이상 무사고 운전사인데도 불구하고 한 번도 운전 요령을 알려 주지 않았고, 운전면허 시험 볼 때도 도와주신 적이 없다. 오직 이 말씀만 하셨다. “절대 어디 가서 운전 실력을 자랑하지 마라! 운전은 나만 잘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니 조심조심 방어운전을 해야 한다.” 자식들을 데리고 운전하면서 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씀이 자주 떠오른다. 돌이켜 보건대 아버지에게 배웠더라면 아마도 아버지와 많이 싸웠을 것이다. 운전은 절대로 아는 사람에게 배우지 말라는 속설이 있지 않은가. 이 자그마한 일화를 통해 아버지의 지혜에 대해 되새기게 된다.

“자동차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계는 내가 정비를 잘못해서 그런 것이지. 기름칠한 만큼 값을 하는 것이 기계란다.” 늘 정직함을 귀하게 여기셨던 아버지, 장가가서 자식까지 두고 있는 아들을 걱정하시는 아버지는 가끔 전화로 이런 말씀을 늘어놓으신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교하면 아버지는 디테일한 분이고, 어머니는 와일드한 분이셨다. 예를 들면 집을 살 때 아버지가 이런저런 계산을 하면서 망설이면 어머니가 계약을 하고 오셨다. 그런 찰떡궁합이 남부럽지 않은 열매를 맺은 것이다.

운전사 월급으로는 자식 셋의 뒷바라지가 만만치 않으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15년 무사고로 당시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아 개인택시를 얻으셨다. 서울 시내에서 무사고로 개인택시를 받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몇 년 전에는 개인택시를 팔고 집에 있는 것이 심심하셨는지 매일 서예학원을 다니기 시작하셨다. 꾸준히 3년을 다니시더니 대한민국 서예대상전에 참가해 금상을 받으셨다. 공부에 대한 미련이 있으셨나보다.

아버지는 술을 엄청 좋아하셨다. 한때 맥주회사 차를 운전해서 그랬는지 술을 많이 드셨다. 몇 달 전 아버지는 큰 수술을 받았다. 한쪽 신장을 떼어내는 수술이었는데, 큰 충격을 받으셨는지 부쩍 몸이 약해진 모습이었다. 요즘은 술 한 잔이 생각나신다면서도 술을 드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지금도 수술 부위가 아프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늘 자신보다 아들 걱정에 귀 기울이시면서 버팀목이 되어주신다.

아버지의 직업을 이해하는데 많은 세월이 걸렸다. 자식을 키워보니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게 되었고 아버지의 직업을 외면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버지가 되어 보니 아버지로서 처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뒤늦게 깨닫고 있다. 내 아이는 아버지인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아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무엇일까. 아마도 아들과 잠깐이라도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리라.



※ 이 칼럼은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와 한경닷컴 <윤영돈의 직장인 눈치 코치> 칼럼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새로운 칼럼을 무료로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칼럼니스트로 이름보다 '윤코치'라는 필명이 더 유명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윤영돈 박사는 기업교육과 대학교육을 두루 경험한 국내 1호 커리어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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