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일생에 단 한 번은 사하라를 만나라

일생에 단 한 번은 사하라를 만나라!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매일 다른 밤이지만 밤에 만나는 하늘이니 모두 밤하늘이다. 하지만 같은 밤하늘이어도 날마다 그는 다른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눈물을 감추기 위해 올려다보았던 밤하늘, 다짐과 각오를 새롭게 하기 위해 바라보았던 밤하늘, 학문적 구루들의 족적을 찾아가면서 만났던 경이로운 밤하늘, 그리고 부모님이 지켜보고 계실 밤하늘……. 언제나 밤하늘은 나의 안식처이자 서글픔을 삭여주는 진정제였고, 아픔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였으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하는 각성제였다.

사하라 사막에서 맞이한 밤하늘은 그동안의 밤하늘과는 또 달랐다.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삭막한 사막, 가도 가도 끝이 없이 펼쳐지는 막막한 사막,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적막한 사막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움막 같은 사막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막을 달리는 레이스’. 여기에 온 다른 이들에게 사막이란 무조건 건너야 할 도전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생각되었다. 레이스를 하는 내내 일찍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를 보았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과 함께 고등학교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도 함께 담겨 있었다. 힘겨운 레이스를 마치고 녹초가 되어 누운 모래바닥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나에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냈다.  

내가 사하라에 간 이유 중의 하나는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하늘에 대한 동경심 때문이었다. 숱하게 읽은 책과 말로만 듣던 사막의 밤하늘은 내가 늘 보던 밤하늘과 어떻게 다를까.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견딜 수 없는 서러움이 북받쳐 오르거나 참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이 흐를 때 밤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주로 술기운에 방문하는 어둠에 깔린 수도전기공고 교정의 실습동. 그 앞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을 아로새겨준다. 밤늦게까지 용접을 하다 기숙사 옥상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나의 암담한 미래 같았다. 때로는 담을 넘어 술을 마시고 돌아와 옥상에서 밤하늘을 바라본다. 진한 술 냄새가 밤공기를 타고 다시 코끝을 찌른다. 

“나는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는다. 나의 눈동자가 땅으로 되돌아올 때, 세상은 나에게 소름끼치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의 삶과 영화 인생을 조명한 평전, 《트뤼포: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중에서

나 역시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는다. 내 눈동자가 땅으로 되돌아올 때 세상은 다시 힘겨운 전투를 벌여야 될 전쟁터로 바뀌기 때문이다. 부모를 잃은 서러움과 그리움이 교차하면서도 힘든 세상을 견뎌나가야 한다는 현실적 중압감이 싫었다. 그걸 잠시나마 잊기 위해 밤하늘을 올려다보지만 그것도 잠시뿐, 적막한 밤하늘은 그 속에 먼동이 터오는 아침의 태양을 잉태하고 있다. 그 아침은 다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괴로움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기댈 곳 없는 절망적인 현실을 애써 회피하기 위해 올려다 본 하늘. 하기 싫은 용접을 지금 내가 왜 하고 있는지 밤하늘의 달과 별에게 물어보곤 했다. 물론 아무 대답도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재미없이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를 잊고 잠시라도 견딜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수도전기공고 교정에서 맞이하는 밤하늘은 각별하다. 후배구타로 맞은 무기정학의 아픔을 모면하기 위해 밤이 되면 개포동 달밤을 벗 삼아 포장마차에서 마셨던 소주, 음주 후에 몰래 교정을 거닐면서 바라본 밤하늘은 암담하기만 했던 회색빛 청춘의 추억을 아련하게 되살려준다. 아무리 올려다봐도 밤하늘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말을 걸어온다. 그 말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보지만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는 밤하늘이다.

밤하늘에 뜬 구루들처럼

공고를 졸업하고 한국전력 평택화력발전소에 만난 밤하늘은 유난히도 싸늘했다. 저녁을 먹고 발전소 맨 꼭대기에 올라가면 아파트 옥상처럼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곳이 있다. 저녁 근무를 들어가 인수인계를 받은 다음 현장을 점검하고 발전소 꼭대기에 올라가 맞이하는 밤하늘은 막막했다. 탈출구를 찾아야 하지만 쉽게 보이지 않고, 술기운에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도 꽤나 많았다.

끝을 모르는 방황을 하다 우연히 잡아든 책이 바로 공고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한 수기가 들어 있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법과대학으로 가서 고시를 패스해야 되겠다는 일념이 생겼다. 그때 바라보는 밤하늘은 참으로 가슴 뛰는 뜨거운 밤하늘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공부를 하던 나에게 그 당시 올려다보던 밤하늘은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온 대학 캠퍼스에서 맞이했던 밤하늘은 불안과 우울의 바다로 시작되었다. 방탕과 방황을 청산하고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대학 초반, 다시 방황은 시작됐다. 다행히 밤새워 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버리기 시작했고, 새벽 5시 교회의 타종소리를 들을 때까지 책의 바다에 빠져 헤어 나올 줄을 몰랐다. 그때의 밤하늘은 지식의 하늘이었고 가까이가면 갈수록 더 멀게만 느껴지는 선각자들이 살아가는 하늘이었다. 또한 읽어도 읽을 게 많아지고 모르는 사실만 더 많아지는 좌절과 절망의 하늘이기도 했다.

가장 낮은 바다로 흘러들어간 물이 뜨거운 태양빛의 힘으로 수증기로 변신, 가장 높은 곳으로 상승하듯이 가장 낮은 학문의 바다에서 유영(遊泳)하다가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 시대를 초월하여 빛나는 별이 된 학문적 구루들이 한 없이 부러운 시절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먼동이 터오는 새벽하늘에 내 꿈을 심곤 했다. 

그 꿈을 좇아, 하늘의 별이 된 구루들을 만나기 위해 태평양이라는 학문의 바다를 건너 미국 플로리다로 가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공부는 새벽까지 이어졌고, 피곤한 몸을 펴며 새벽녘에 올려다 본 미국 플로리다주의 밤하늘은 고향산천을 생각하고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을 떠오르게 하는 밤하늘이었다.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매일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낮에는 공부에 매진하고 밤에는 알바를 통해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12시가 넘어 알바를 끝내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던 길. 그 길에서 바라본 밤하늘은 고여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한여름 소낙비처럼 서글픈 밤하늘이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더 높이 들어 응시했던 밤하늘, 복받치는 서러움을 참고 견디기 위해 많이도 참았다. 하지만 밤하늘도 절치부심 끝에 받아 쥔 박사학위와 함께 꿈과 희망의 바다로 변해가고 있었다. 바다의 물도 들어오는 물과 수증기로 변신하는 물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하듯 밤하늘의 색깔도 절망과 좌절의 검은 색에서 희망과 용기의 따뜻한 색으로 변화되어가고 있었다. 

유학 수 삼성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다시 학문의 바다로 돌아와 밤하늘의 별들과 재회하기 시작했다. 새벽 5까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더 많아진 밤하늘의 별들처럼, 더 만나고 싶은 학문적 구루들이 내 마음 속에서 별들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책을 읽다 지치면 밖으로 뛰쳐나가 운동장을 수십 바퀴씩 돌았고, 체력이 바닥이 나면 벌러덩 드러누워 다시 하늘을 보았다. 유난히도 반짝이는 별들. 그들과의 대화도 잠시,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책 속의 별들을 만났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학문적 구루들의 별, 그들과 만나면서 무언의 지적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책에서 만난 별들의 이야기는 새벽녘 글쓰기로 이어졌다. 칠흑 같은 밤의 적막을 깨며 울리는 키보드 소리. 머릿속에 담긴 생각과 가슴의 흔적이 도망가기 전에 최대한 담기 위해 애썼다. 그 소리는 밤을 흔드는 유일한 지적 환희와 깨달음의 소리였다. 그렇게 글을 쓰다 창밖을 바라본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귓전을 스치며 멀리 보이는 밤하늘의 별이 속삭인다. 할 수 있는 온힘을 다해 학문의 바다에 뛰어들어 신나게 유영하다 보면 너도 밤하늘의 별이 될 수 있다고.

안동대학교에서 2년 반을 지낸 다음 모교인 한양대로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84년에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에 입학한 학생이 17년 만에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돌아온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교수이기 이전에 선배로서 후배를 가르친다는 기대감과 함께 가르침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교수는 과연 뭐하는 사람인지 물어보았다. 학생시절보다 더 열심히 연구하고 그 결과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교수가 되자고 다짐했던 시절, 학자는 말발보다 글발로 승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이빨은 썩지만 글발은 썩지 않으니까. ‘쓰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모토 아래 ‘쓰면 쓰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매일 반복해서 글을 썼다. 늦은 밤 연구실을 나서면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참으로 숙연했고 때로는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는 밤하늘이었다. 할 일이 많아지고 관심분야가 확산되면서 밤을 새워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언제나 즐겁고 신이 났다. 언제나 열정은 불타오르고 꾸준한 운동으로 단련되어가는 체력으로 에너지는 넘쳐흘렀다.  

나는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추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렇게 달려오다…… 다시 내 앞에 놓인 사막의 밤하늘. 나는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왔지만 2007년 4월 11일, 생사를 넘나드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맞아야 했다. 자칭 411 사태라고 이름 지은 이 사고로 나는 생사를 넘나들었고, 오랜 시간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다시 한 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삶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사실,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사막에 간 것은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동안 줄기차게 달려온 삶의 속도를 줄이고 삶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를 넓히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사하라는 달리러 간 곳이 아니라 멈추러 간 곳이었다. 열심히 달려오기만 했던 20대와 30대, 대형 사고를 당한 40대, 그리고 여전히 다시 달리고 있는 50대. 이제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면서 고민해야 할 화두를 찾아야 했다. 광활한 사막 벌판 한가운데를 지나며, 내가 밟고 지나가는 한 줌의 모래 그리고 한 방울의 땀과 한 모금의 물. 한순간 스쳐가는 바람까지도…… 모두 나의 친구이며, 거대한 우주 생명 공동체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동안 쌓인 생각의 때를 벗기고 마음의 군살을 제거하자.’ 속도경쟁은 평지에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 또한 나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작은 재능으로 세상이 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이 더불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사막에서 열리는 레이스는, 도전하는 자세와 용기도 중요했지만 사막을 친구삼아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했다. 광활한 사막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 사막에는 별이 쏟아진다고, 참으로 별이 쏟아졌다. 오염되지 않은 맑은 하늘이 밤하늘의 별도 더 아름답게 보여주는 듯했다. 사막에서 만난 어린 왕자도 이런 밤하늘을 벗 삼아 꿈꾸는 밤을 보냈을까.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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