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새처럼 가벼워져라!

새처럼 가벼워져라!  

“날지를 못하는 사람은 대지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을 알아야 한다. 나 이렇게 가르치는 바이다“(차라투스트르라는 이렇게 말했다, p. 321). 

‘주역(周易)’에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만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즉, 극도로 흥성하면 반드시 쇠미하게 된다는 의미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되풀이한다. 지금 오름세를 타고 승승장구(乘勝長驅)한다고 자만하지 말 것이며, 역경을 만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고 할지라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말이다. 순조로운 상황에서는 역경에 대비하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어려움이 겹치는 상황에서는 도약의 전기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닥은 희망의 터전이며, 앞으로 나가지 못한 지금 잠시 머물러 있는 정체(停滯)는 도약의 발판을 의미한다. 지금 바닥을 기고 있거나 뒹굴고 있다고 좌절하지 말자. 바닥을 기어봐야 걸을 수 있고, 걸을 수 있어야 달릴 수 있다. 달릴 수 있어야 있어야 날아오를 수 있다. 바닥을 기기도 전에 걸으려고 하다가 큰 코 다칠 수 있다. 걷기도 전에 달리려다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달리기도 전에 날아오르려다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바닥은 결국 나중에 걷고 달리는데 필요한 내공을 연마하는 희망의 터전이다. 비행기가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더 넓은 활주로가 필요한 것처럼 지금 바닥에서 기고 걸으며 달리는 연습은 더 오랫동안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한 철저한 준비의 장이라고 생각하자. 

“언젠가 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부터 배워야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날 수는 없는 일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322). 기본부터 철저하게 익혀야 더 오랫동안 더 멀리 날아갈 수 있다. 반드시 자기 힘으로 날아올라야 한다. 남의 힘으로 또는 행운으로 뜬 사람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자기 힘으로 날아오른 사람은 날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만 남기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비웠기에 더 가볍게 날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남의 힘이나 운 좋게 뜬 사람은 아직도 욕심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불필요한 소유물을 무겁게 지니고 떴기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추락할 수 있다.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강물로 물을 버려야 바다에 도달할 수 있고, 나무도 낙엽을 버리고 몸집을 가볍게 해야 엄동설한(嚴冬雪寒)의 추위를 견뎌내고 새봄의 희망을 싹틔울 수 있다. 침엽수는 겨울이 되어도 나뭇잎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활엽수는 겨울이 되면 모든 잎을 다 버리고 나목으로 겨울을 맞이한다. 겨울에 눈이 오면 침엽수 위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부러지지만, 활엽수는 나뭇가지에 눈이 어느 정도 쌓이면 아래로 미끄러진다. 그래서 활엽수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된다. 내 것을 버리고 몸집이 가벼워지면 몸과 마음도 가벼워진다. 버리고 비워야 가벼워질 수 있고 가벼워져야 더 오래 견딜 수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 짐이 너무 무겁거나 버거울 때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라는 표현을 쓴다. 누구나 삶의 짐을 어께에 짊어지고 살아가지만, 유독 나에게만 더 무거운 짐을 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 그 무게는 더 무겁게 느껴진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삶의 짐은 누구나 지고 다니지만, 그 무게의 차이가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만 무거운 짐을 주었다고 불평불만을 할 때 실제 무게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다. 이렇게 자신을 한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빠트리는 삶의 짐을 차라투스트라는‘중력의 악령’이라고 했다. 중력의 악령이 주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날지 못하는 사람은 대지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낙타처럼 세상이 시키는 모든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순응하고 적응해서 살아가려니 그 짐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선하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도덕적 판단기준, 선악을 척도로 하는 가치관이 우리 삶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부모님과 선생님 말 잘 듣는 착한 자식과 학생으로, 조직에서는 공연한 평지풍파 일으키는 문제아가 되지 말고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순진한 직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일종의 중력의 악령이다. 스스로 행복지기 보다는 행복해 보이기 위해서 살아가고, 나의 가치관과 판단기준에 비추어 내 삶을 영위하기 보다는 남이 만든 도덕과 가치관에 비추어 내 삶을 살아간다. 삶이 힘겨운 이유는 누군가 만든 선악의 판단기준이나 도덕적 가치, 그리고 행복의 척도에 대해서 나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거나 내 생각과 의견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논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그렇고, 물론 그러하며, 당연히 그렇다는 ‘낡아 빠진 자부심’과 선악의 판단기준이라는 지참물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천근만근 무겁게 만드는 원흉인 것이다. 

중력의 악령은 우리 삶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나를 무겁게 내리는 누리는 기존의 가치관 제도, 관습과 도덕에 비추어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나는 잘 하고 있는지를 비추어 보면 볼수록 내 몸은 더 무거워진다. 나의 의지와 용기로 스스로 던진 물음에 자신을 내맡길수록 새처럼 가벼워질 수 있다. 고통스럽고 거추장스러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지고 자신을 극복해나가는 자기변신의 과정이 거듭될수록 내 몸은 가벼워진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구습과 관행, 악덕과 낡은 가치관을 벗어던지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를 무겁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나의 의지를, 나의 의욕을 막는, 나를 피로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네 욕망의 물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날아가려는 나의 분투노력을 가로막는 장본인은 무엇인가? “나는 하늘을 날아갈 준비를 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나의 천성이 이러한데 어찌 그것이 새의 천성이 아니겠는가. 나 무엇보다도 나는 중력의 악령에 적의를 품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새의 천성이렷다. 진정, 불구대천의 적의와 최대의 적의 그리고 뿌리 깊은 적의를! 나의 적의가 일찍이 날아보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며 길을 잃고 해매어 보지 않은 곳이 어디 있던가!”(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p.317-318).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그리고 그것이 과연 무엇 때문에 옳아서 지켜야 되는지를 알 수도 없는 이 중력의 악령 때문에 삶은 고통스럽고 거추장스런 짐이 되고 만다. 내 삶을 무겁게 만드는 중력의 악령을 찾아내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나의 영혼과 의지로 세상을 향해 날아보자. 얼마든지 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오래 날아갈 수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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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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