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And End: 삶은 End가 아니라 And의 향연(2)

입력 2011-04-02 15:02 수정 2011-04-02 15:02


End가 아닌 Pause

현대인치고 피로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일본의 면역학자 아보 토오루(安保徹) 박사는 피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의합니다. “목욕을 하고 푹 잤는데도 피곤하다면 당신은 분명 과로한 것이다.”

자연의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병을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하라는 몸의 명령’이라고 정의합니다.

위 두 논리를 하나로 합치니 뭔가 그림이 맞아떨어집니다. 몸이 아프면 약이나 병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푹 쉬는 것도 병행해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감기 환자들에게 어지간하면 약을 처방해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건강의료보험 재정에서 감기약값 비중이 엄청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사실 약을 먹으나 그냥 미지근한 물 많이 마시고 푹 쉬나 치료시간은 똑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기약을, 특히 내성이 생겨 더 해롭다는 항생제를 엄청나게 복용합니다. 그뿐인가요? 머리 아프면 두통약, 속 아프면 소화제, 심지어 근육통증에도 근육이완제를 먹습니다. 쉬는 게 불안하기 때문이지요.

쉬지 못하면 오히려 더 위험한데, 고무줄도 계속 당기기만 하면 끊어지는데 우리는 왜 그토록 쉬는 게 불안할까요?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의 습관 같은 것은 아닐까요?

대한민국 대표 골프선수 박세리가 <무릎팍도사>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해 굴곡 많았던 골프인생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승승장구하던 골프인생에 어느 날 찾아온 슬럼프, 그 이유를 그녀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승리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기 위해 쉬지 않고 연습만 했기에, 골프를 즐기지 못하고 승리에만 집착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멈춤과 쉼 없는 질주가 결국 오랜 슬럼프를 초래했다는 것이지요.

평범한 우리라고 박세리 선수와 딱히 다를 건 없습니다. 식민지 강압통치로 피폐해졌다가 3년 전쟁에 폐허가 된 나라, 미국의 원조가 없었다면 지금의 아프리카나 북한처럼 무수히 많은 국민이 굶어죽었을지도 모를 끔찍한 가난, 우린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질주했지요. 잠시라도 멈췄다가는 다시 한 번 그 끔찍한 가난의 괴물에 먹혀버릴 것 같은 불안감, 그래서 계속 달렸지요. 과거에 비하면 엄청난 풍요를 제대로 누릴 줄 모르고, 그저 폭식과 폭음만을 휴식이라 생각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에게 ‘논다’는 것은 좋은 의미일 수 없었습니다. ‘놀고 있네.’ ‘놀고 자빠졌네.’ ‘취업이 안 돼서 놀고 있습니다.’ 다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오죽하면 ‘놀면 뭐 하니, 술이나 마시자’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게 잠시도 놀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나요? 삶의 질은 어떻습니까?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슬럼프 같습니다. 자, 그럼 여기 잠시 멈춰서서, 박세리 선수처럼 지나온 길을 한번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나도 그랬습니다. 적절히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달리다가 죽을 뻔했습니다. 갈비뼈 다 부러지고 하반신마비가 될 뻔했습니다.

공고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나는 정말 치열하게 공부해서 3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후에도 전혀 쉬지 않고 곧바로 삼성인력개발원에 입사해 5년 동안 워커홀릭처럼 일만 했습니다. 일하고 공부하면서 논문과 책도 썼습니다. 한양대학교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나는 브레이크 없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강연을 하고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쉴 틈 없이 살았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맞았습니다. 내 직선적 삶에 찾아온 일종의 경고였습니다. 지금 ‘정지’하지 않으면 더 높은 단계로 ‘정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일대사건이었습니다.

검도에는 ‘중단 겨눔’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멈춰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음 공격을 위한 치열한 멈춤입니다. 움직임이 없어도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과정이기에 ‘중단 겨눔’에는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감돕니다. 검도에서 공격을 할 때 순간순간 멈춰서지 않으면 그 공격은 실패로 끝나기 쉽습니다. 중단의 겨눔이 있어야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상대의 어디를 공격할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단 겨눔은 공략할 급소 포인트를 포착하는 치열한 준비시간입니다.

그날 나를 찾아온 대형 교통사고는 나에게 중단 겨눔의 시간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밤에도 쉴 줄 모르던 내가 대낮에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멍하니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마신 와인 한 모금에서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도 했습니다.

“모든 행복은 느긋한 아침식사에 달려 있다(All happiness depends on a leisurely breakfast).”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존 건서(John Gunther)의 말입니다. 오늘 아침밥은 어떻게 드셨습니까? 아니 드시기는 했나요?

매일매일, 순간순간 ‘빨리빨리!’를 외치며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주의 끝에 정말 행복이 있을까요? 우리는 쉬는 법과 노는 법을 잊은 채 살아갑니다. 대나무는 고속으로 성장하다 마디를 맺습니다. 그 마디는 멈춤이면서 동시에 쉼일 것입니다. 그 마디의 힘으로 세찬 비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더 높이 자랄 수 있는 대나무처럼, 적절한 시기에 멈추고 쉬면서 제대로 놀아야 재충전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즐기는 여유, 그게 바로 곡선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곡선은 여유를 갖고 속도를 줄이며, 가끔 멈춰 방향을 점검하는 삶, 그리고 쉼을 통해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곡선형 삶입니다.

김소연 시인은 《마음사전》에서 ‘중요한’ 일과 ‘소중한’ 일을 구분합니다. 중요한 일은 우선순위를 염두에 두고 결정하지만, 소중한 일은 그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합니다. 중요한 일은 시간을 다투는 일이고, 소중한 일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소중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데 시간을 많이 씁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네 삶도 쉴 시간은커녕 매일 무엇에 쫓기듯 허둥대게 됩니다. 소중한 인간관계가 중요한 인간관계로 바뀌기 시작하면 인간관계의 의미와 본질적인 가치는 계산적 이해타산의 뒤로 숨어버리기 쉽습니다.

삶에서 시간이 덤으로 주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시간을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소중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불평하기 전에, 오늘도 습관처럼 바쁘게 되풀이하던 일을 일단 멈추고 생각해볼 일입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인가?’

혹시 월요병에 시달리십니까? 주말에 집에서 푹 쉬었는데도 몸이 무거우십니까? 여행을 떠날 여유가 없으십니까? 잘못된 술자리로 인간관계와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까? 일에 치여 가족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까? 잠깐 멈춰보십시오. 지금 잠시 멈춘다고 정말 End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처: 유영만, 고두현의 '곡서이 이긴다'(리더스북)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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