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두뇌를 가진 사나이

입력 2009-10-20 09:00 수정 2011-04-18 10:09

  간밤의 취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잠이 깨었다. 뒤척이다 보니 수 십 년 전 일과 바로 엊그제 일이 한꺼번에 겹쳐졌다가 사라지고 다시 오버랩 된다. 이렇게 까마득한 옛날과 방금이 삽시간에 교차되는 가운데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의 수레바퀴는 그야말로 화살보다도 빨리, 아니 번개보다도 더 빨리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알폰스 도오데의 동화 「황금 두뇌를 가진 사나이」에서 한 번 써버리면 다시는 채워지지 않는 “머릿속 황금”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처음 동화를 읽었을 때는 인간의 존엄성 내지 자부심 같은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제는 그 황금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던 길던 주어진 시간을 쪼개 쓰다 다 떨어지면 그만인 것이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살기 위하여 황금으로 된 두뇌를 조금씩 떼어 가면 떼어갈수록 차츰 그 마지막 순간에 다가가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혜성같이 나타났다 유성처럼 사라지는 인생”을 덧없다고 안타까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하며 미련을 가져 봤자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안타까움과 미련을 벗어나는 한 가지 탈출전략은 머릿속 기억의 저수지를 푸르고 아름다운 순간들, 최선을 다했던 날의 성취감, 좋은 사람들과의 화음(和音)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유쾌한 일들, 후회스러운 인상들과 소음을 생각의 창고에서 되도록 밀려 나게  하는 것이다. 과거로도 또 미래로도 여행하는 생각의 저수지를 건강한 추억과 활기찬 계획들로 채워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자님 사촌 동생도 대답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의 심성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200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니체(Friedrich. W. Nietzsche)의 주장이다. 이는 세월이 흘러가고 환경이 바뀌어도 사단칠정을 가진 인간의 본바탕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사람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뿌리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사회에서 이해득실의 결과 즉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의 가치는 점차 희미해져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를 다투는 과정에서 모진 행실이나 각박한 인간 군상(群像)은 뇌리에서 지워지기는커녕 더 새롭게 각인될 수도 있다. 사회가 황폐해질수록, 메말라갈수록 오히려 훈훈한 인간적 모습은 더 가치 있게, 더 환하게 빛을 발한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거꾸로 머리에 새겨져 남을 소중한 그 무엇은 함부로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져 가는 것들에는 집착하고 있는 진짜 바보는 아닌지 모르겠다. 작은 것을 잡으려고 큰 것을 내동댕이치는 헛장사를 하는 멍청이 중의 멍청이는 아닌지 모르겠다.

  번개처럼 지나가는 시간속에서 아무리 값비산 가죽과 큰 이름이라도 반짝이는 기억의 조각이나 시간의 파편과는 견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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