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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은 ‘아마도’라는 섬에 산다

자율성은 ‘아마도’라는 섬에 산다

이어령 고문은 “서양문화의 창조성을 키워온 원동력이 ‘아마도’라는 말이었다면 우리의 창조성을 시들게 한 말은 ‘절대’라는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만장일치는 무효’가 아니라 ‘만장일치가 아닌 것은 무효’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라는 말은 창조성을 가로막는 부정적 언어임을 실감할 수 있다.

절대 안 된다는 우리말에 ‘어쨌든’이라는 부사가 있다. 이 말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일방적 폭력의 언어다. 장황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그 어떠한 변론이나 논증을 추방하는 ‘곤봉’ 같은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해야 한다’거나 ‘어쨌든 나쁘다’는 말은 일방적인 폭력,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독재의 언어다. 무조건이 조건을, 비합리가 합리를, 부조리가 조리의 목을 죌 때 생겨나는 짤막한 비명이 ‘어쨌든’이다.

‘어쨌든’이라는 망치는 ‘왜?’라는 질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맹목의 단어다. ‘왜 안 되는가?’, ‘왜 그래야만 하는가?’처럼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그것을 구명해내려는 지적 활동은 ‘어쨌든’ 그래야만 하고, ‘어쨌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그 덫의 부사가 우리의 동사(행동)를 옭아매 놓았다. ‘어쨌든’이라는 말 앞에 판단 중지를 강요하지 말고, ‘어쨌든’이라는 말 대신에 ‘왜?’라는 질문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어쨌든’이 ‘여하간’ 그 답을 찾아나서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을 때 자율성이 살아 숨쉬고 놀라운 상상력과 창조성이 발휘된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가능성의 세계에 들어가기도 전에 ‘어쨌든’이라는 망치를 들면 자율성은 ‘아마도’ 영원히 죽을 것이다. ‘어쨌든’이라는 폭군 앞에서는 자율성의 싹을 잘라버리고, 숱한 난관과 역경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찾아내려는 도전 정신도 무너뜨린다.

남의 생각과 의견에 대한 나의 평가는 나의 편견에 의한 평가일 수 있다. 의견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나의 입장 표명이다. 내 입장은 내가 그 동안 해온 생각의 축적 결과 생긴 나의 관점이다. 입장 표명은 언제나 내 생각을 정리한 결과 이루어진다. 내 생각의 근본과 가정을 의심하고 의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편견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편파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열고 들어주는 개방적인 자세가 편견을 방지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어쨌든’ 안 된다고 못박아버리면 상대방은 심리적 위축감을 느끼고 자신의 의견을 더 이상 개진하지 않는다. 내 의견도 틀릴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도 일리(一理)가 있음을 인정할 때 편견의 늪으로 빠지지 않는다. 내 생각은 언제나 옳은 ‘진리(眞理)’이고 남의 의견은 언제나 문제가 있으며, 나와 다르기 때문에 무리(無理)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지나친 논리적 오류다. 남보다는 내가 무리수(無理數)를 두고 있지 않은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모든 의견은 의심의 대상이자 의문의 대상이다. 내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의심하는 견해는 ‘의견(疑見)’이다. ‘의견(意見)’은 ‘의견(疑見)’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의문의 화살을 던질 필요가 있다. 권위 있는 사람의 의견 역시 의심과 의문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 일단 세상의 모든 의견은 철학자 후설이 주장하는 판단 중지의 괄호 속에 묶어두어야 한다.

속단(速斷)은 판단 실수를 낳을 수 있다. 판단 중지는 어떤 사태나 사물의 속성 또는 사람의 의견을 선입견이나 편견에 따라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경고다. 내 생각의 건전성과 의견의 타당성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된다. 판단이 독단(獨斷)으로 흐르지 않고 속단의 어리석음으로 질주하는 것을 방지하려면 언제나 판단 유보의 느림과 기다림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 판단 유보는 상대방의 아이디어가 꿈을 꿀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출처: 변화는 종이 물고기도 헤엄치게 한다(한경BP 출간)



지식생태학자 유영만의 트위터: http://twtkr.com/kec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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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6일 저녁 7시 한경빌딩 다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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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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