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상식’한 발상만이 ‘식상’한 ‘상식’을 뒤집을 수 있다! 

세상을 뒤집는 아이디어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가운데 이루어지기보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상황,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온다. 뇌는 평소에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뇌는 평소에 익숙한 정보나 자극이 입력되면 뇌안에 축적된 기존의 단어나 이미지, 기억을 떠올린다. 이미 있는 것을 엮어서 외부적 자극에 반응을 한다. 그래서 뇌는 평소 머리를 쓰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서 뇌는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뇌는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효율을 추구한다. 외부에서 색다른 자극이 들어오지 않으면 늘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익숙한 자극이 뇌 내로 입력되면 뇌 안의 프레임은 기존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정보나 이미지를 조합하여 뭔가를 생각해낸다. 익숙한 자극이 뇌 내로 입력되면 기존 고정관념을 근간으로 일정한 단계와 절차로 프로그램화된 회로가 습관적으로 돌아간다. ‘습관적’이라는 말은 ‘습관’이 ‘적’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뇌는 평소 때 습관의 적에 의해서 움직인다. 

그러데 우리 몸이 위험에 노출되었거나 심각한 불편함을 느낄 때 뇌는 긴장모드로 전환된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낯선 환경적 자극이 뇌로 입력되면 뇌는 비로소 머리를 쓰기 시작한다. 뇌는 한계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발 빠르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면 기존의 정보나 경험적 기억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는 판단을 한다. 이미 있는 기존의 정보나 생각으로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나 한계 상황을 돌파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뇌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배수의 진을 치고 한계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색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고 전혀 다른 발상으로 위기상활을 탈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조합해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기존의 생각과 경험을 연결해본다. 이런 저런 시도로 뇌 내는 바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절박한 상황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뇌는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위기 탈출방안을 분주하게 시도해본다. 

대체로 습관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이 굳어져 생긴 것이고, 행동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표현한 말에서 유래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나의 생각이 표출된 것이다. 결국 생각을 바꿔야 말이 바뀌고, 평소 하는 말을 바꿔야 행동이 바뀌며, 행동이 바뀌어야 습관이 바뀐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생활이 바뀌지 않는다. 생각을 바꾸어야 말이 바뀌지만 말을 바꾸면 생각을 바꿀 수도 있다. 내가 평상시에 습관적으로 쓰는 개념을 바꾸면 생각이 바뀌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다. 개념을 세상을 보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색다른 개념을 많이 갖고 있으면 세상을 색다르게 보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다. 색다른 개념은 이제까지 읽어보지 않은 책을 읽는 가운데 습득할 수 있다. 남이 읽지 않은 책을 읽어야 남이 보지 못한 세계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이는 것만 본다. 남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남다른 개념을 새롭게 습득해야 될 뿐만 아니라 기존의 개념도 재개념화시켜 남과 다른 방식으로 활용해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의 세계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세계를 규정한다(Words create World)라는 말이 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려면 지금 갖고 있지 않는 색다른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틀에 박힌 개념을 사용하면 세상은 언제나 물론과 당연, 원래 그런 세상으로 보일뿐이다.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보고 그런 가능성의 세계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야 한다.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개념으로 포착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개념으로만 보인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했다. 오로지 뉴톤만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뉴톤은 ‘왜?’라고 물으면서 물론과 당연,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는 세계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상식으로 가려진 이면의 상식이 아닌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물음표를 던져 시비를 거는 마음,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통렬한 의문을 던져 통찰력을 가져오는 역발상, ‘물론 그렇다’고 생각하는 습관적인 타성에 ‘물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으려는 노력만이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본래 상식은 식상한 지식이다. 상식적인 사람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내면 금방 식상해지는 이유는 상식적인 지식으로 주고받는 아이디어가 상식적인 틀 안에서 사고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깨트릴 수 있는 일탈의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도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상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가 아닐까. 과거의 상식을 믿고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상식을 그대로 신봉하려는 생각을 버릴 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릴 것이다. 때로는 상식을 몰상식한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몰상식은 모두가 지켜야 될 예의범절이나 도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생각에 심한 의문을 던져 상식도 더 이상 상식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은 소수의 몰상식한 사람이 상식에 시비를 걸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려한 덕분에 상식적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문명발전과 과학적 발명을 하게 된 것이다. 식상한 상식을 몰상식하게 보는 사람에게 상식은 전혀 다른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지식의 원천이 된다. 비록 초기에는 몰상식한 발상이었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몰상식한 발상도 상식으로 전환되고, 상식은 곧 식상해진다. 상식이 식상해지기 이전에 상식에 시비를 거는 몰상식한 발상만이 익숙한 상식적인 세계를 벗어나 가능성의 천국,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받아보지 못한 색 다른 자극을 받았을 때, 이제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익숙하지 못한 사람을 만났을 때, 이제까지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을 가봤을 때, 이제까지 읽어보지 못한 책을 읽었을 때,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심각한 위기상황과 한계국면을 맞이할 때 뇌는 비로소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프레임을 작동시킨다. 결국 남 다른 아이디어를 내는 유일한 방법은 남 다른 자극을 뇌에 끊임없이 제공하는 방법 밖에 없다. 뇌에 주는 자극이 달라야 반응도 달라진다. 다른 답을 얻고 싶으면 다른 자극으로 뇌에 주먹질을 해대라. 일상이 지루하면 의도적으로 한계상황을 만들어 그 속으로 몸을 던져 돌파구를 찾아보라. 삶이 다이나믹해지고 드라마틱해진다. 고은 시인도 “떠나라 낯선 곳으로”라고 외치는 ‘낯선 곳’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안도현 시인도 상투성은 시의 가장 큰 적이라고 했다. 그것은 대상을 피상적으로 인식하면서 생기는 마음의 독버섯과 같다고. 늘 하던 일만 하면 늘 그저 그렇게 지낸다. 매일 매일의 틀에 갇혀 지내면 매일 매일 그저 그렇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맞이하고,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던 방식, 상투성의 그물, 고정관념, 습관과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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