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시작하는 방법은 그냥 시작하는 것이다

시작(始作)과 시련(試鍊):
남 다른 시작을 해야 남 다른 시련을 경험할 수 있고,
남다른 시련만이 남 다른 시금석을 만들 수 있다! 

시작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주연도 한 때는 조연이었다. 정상에 오른 사람도 한 때는 바닥을 기었다. 최고도 한 때는 최악의 상황에서 헤맸다. 마라톤 선수도 한 때는 짧은 거리 밖에 달리지 못했다. 뭐든 처음부터 한꺼번에 성취할 수 없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된다는 등고자비(登高自卑)의 철학을 보더라도 시작하는 처음이 있어야 끝나는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 뭔가를 시작해야 뭔가가 된다. 시작하지 않고 되는 일은 없다. 시작하는 방법은 그냥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시작하기 위한 이론과 방법을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가를 연구하고 완벽하게 시작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준비해왔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시작하다 완벽하게 시작하지 못할 수 있다. 일단 준비가 어느 정도 되면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시작할 수 없다. 시작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론이나 방법이 없다. 그냥 시작하면 된다. 

일단 뭔가를 시작하면 위기도 따르고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도전과제도 직면한다. 때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한계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여기가 끝이라고 포기하면 여기서 나의 성장은 멈춘다. 도전하기도 전에 한계선을 그으면 거기가 바로 한계다. 그런데 누군가는 한계라고 선을 그어 놓은 그 지점에서 도전을 시작한다. 한계를 넘어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선 한계지점까지 가보는 것이다. 한계지점까지 가보지도 않고 한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히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런 사람이 한계를 깨닫는 유일한 방법은 한계를 넘어서는 다른 사람을 목격하는 방법이다. 남들이 한계상황을 넘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지점이 한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불가능과 한계상황을 넘어서는 유일한 방법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불가능한 방법으로 도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불가능한 한계상황을 넘어서지 못하면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도전을 시도하고, 그렇게 시도하다보면 난공불락의 벽도 넘어설 수 있다. 높디높은 벽 앞에서 절망하지만 않고 언젠가는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갖는다면 내 앞에 놓인 장벽은 물리적 장벽이라기보다 심리적 장벽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장벽을 향한 무한 도전의 반복은 장벽을 넘어서는 색다른 방법을 깨닫는 소중한 체험적 학습기회가 된다. 높이뛰기로 넘을 수 있는 인간의 한계는 2m였다. 정상적인 높이뛰기 선수들은 모두 앞으로 높이뛰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1968년 멕시코 올림픽대회 높이뛰기 우승자인 미국의 D. 포스베리가 체조 ·다이빙의 재주넘기에서 힌트를 얻어 뒤로 넘는 일명 배면 뛰기 방법으로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2m벽을 넘었다. 그 이후 이 방법은 포스베리 플롭기법으로 명명되어 오늘날 모든 높이 뛰기 선수들은 모두 이 방법으로 높이뛰기를 하고 있다. 

정상적인 사람은 정상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정상적으로 시작한다. 정상적으로 시도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사고 수준을 넘어서는 발상을 하기가 어렵다. 높이뛰기에서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2m 높이를 넘을 수 있었던 D. 포스베리는 정상적인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역발상을 시도해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을 차지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D. 포스베리는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이렇게 질적 전환은 양적 축적 없이 불가능하다.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변곡점에 오기까지는 우여곡절, 산전수전, 파란만장, 노심초사, 절치부심의 과정 속에서 축적된 내공연마 과정이 있었기에 어느 순간 물리적 장벽을 넘어서는 변곡점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변화는 없다.  

시작(始作)이 두려운가? 두려우면 시작하지마라. 시작하지 않으면 시험(試驗)도 시련(試鍊)도 없다.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 시련을 견디지 못한 사람치고 위대한 시금석을 마련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 시작해서 남다른 시험도 보고 시련도 겪어야 남다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시작하면 시험과 시련은 따라온다. 시작하지 않으면 시험과 시련도 경험할 수 없다. 시험을 견뎌내고 시련을 이겨낸 사람만이 마침내 꿈의 목적지, 시원(始原)에 도달할 수 있다.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쉬지 않고 시추(試錐)해야 시원(始原), 즉 사물이나 현상이 시작되는 뿌리를 만날 수 있다. 시추란 지각 내부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또는 석유 ·천연가스 ·온천 ·지하수 등을 채취하기 위해 지각 속에 구멍을 뚫는 일을 말한다. 시추란 또한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다양하게 시도되는 탐험을 의미한다. 여기저기 파봐야 물줄기를 만나는 것처럼 이런 저런 시도를 해봐야 내면에 잠자고 있는 욕망의 물줄기를 만날 수 있다.  

시작(始作)하지 않으면 시작(詩作)이 안 된다. 무조건 시작해야 시상(詩想)이 떠오른다. 시작(始作)하면 시작(始作)하기 이전의 시상과는 전혀 다른 시상도 떠오른다. 완벽한 시상을 갖고 시작(詩作)하려고 마음먹다 시작(始作)도 못할 수 있다. 이런 저런 시작(詩作)이 습작(習作)을 만들고 습작의 누적이 대작(大作)과 걸작(傑作)과 명작(名作)을 가져온다. 이런 점에서 시작(始作)은 시작(試作, prototype)하는 것이다. 시험적인 작품(試作, prototype)을 만들어 본래 의도했던 작품이 추구하는 철학과 모습에 걸 맞는 것인지를 신속하게 판단하고 그렇지 않다면 잘 못된 부분을 수정하면서 완성작에 조금씩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시도가 시작(試作)이다. 시작(始作)은 시작(試作)을 통해서 완성작에 다가가는 것이다. 걸작과 대작도 완성작이 아니라 미완성작이고 실패작이다. 미완성작이고 실패작이라고 생각해야 지금보다 더 위대한 걸작과 대작을 창작할 수 있는 발전가능성이 있다. 

완성작은 오로지 자신이 판단하는 잠정적 작품이다. 완성작을 만들었다고 거기서 만족하면 더 위대한 걸작과 명작은 나오지 않는다. 완성작은 또 다른 완성작을 만들어나는 중간 작품이다. 완성작은 그래서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완성작은 달성해서 안주하고 만족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면서 끊임없이 더 나은 작품에 이르는 과정적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목표와 성과와 성취, 그리고 완성은 모두 관념적일뿐이다. 목표를 달성해서 성과를 보여주었고, 그래서 지금까지 추구했던 바를 완성했다고 성취감을 느끼는 순간 목표와 성과는 종착역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성공은 성취가 아니라 성장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공의 의미와 가치를 둘 때 남보다 빠르게 성공하려는 노력보다 전보다 의미심장하게 가치를 느끼는 과정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서 왜 그토록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 해야만 되는 이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알아야 성공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자기의 존재이유를 아는 사람이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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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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