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능선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어느 일요일 친구들과 북한산에 올랐다가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에 있는 허름한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일이 있었다. 입맛을 다시며 정갈하게 조리된 동태찌개, 제육볶음을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그런데 시골누이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일하시느라 시장할 텐데 많이 드세요” 하면서 음식을 더 내왔다. 그 분은 아마도 나를 마침 근처 도로 공사장 인부로 여기시는지 몰랐다. 어려운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 씀이 따뜻하였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목마른 이에게 시원한 물을 주고, 배고픈 이에게 따뜻한 밥을 주는 일보다 더 고귀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값을 치르면서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값싸고 배부르게 대접하는 아주머니는 바로 저 앞에 사시던 대통령 못지않게 훌륭한 분”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러자 그 주인은 “우리 집에서 음식을 드시는 분들을 하느님같이 생각합니다.”라고 조용히 대답하였다. "게딱지만한 식당을 운영하여 먹고 살고, 자식들 교육까지 시키니 자기 식당 손님들이야 말로 하느님처럼 소중한 분이다"라는 이야기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야말로 대통령같이 큰 분한테서 하느님처럼 거룩한 대접을 받은 셈이었다. 그렇다! 대통령과 버금가는 자부심을 가진 생산자가 하느님처럼 모시는 소비자를 위하여 제품을 생산한다면 갖은 정성과 노력을 다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쓰실 물건을 만드는데 어떻게 감히 건강에 해로운 재료를 쓸 수 있으며, 하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이중장부를 작성하여 세금을 빼먹으려는 간 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진리는 평범한데 있다”는 말을 실감하였다. 생산자가 최선을 다하여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바로 소비자주권 시대의 직업윤리이자 장인정신이며 기업가정신이다. 이 세 가지가 개인과 기업 그리고 국가 경쟁력의 바탕이 된다.
  # 요식업 종사자의 직업윤리는 유해식품이나 먹던 음식을 다시 내놓지 않는 일에서 시작한다. 맡은 일을 소비자 입장에서 정직하게 처리하는 것이 직업윤리(vocational ethics)다.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미래)사회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 신뢰 관계는 갈수록 더 중요해지는데 이는 직업윤리를 지키는데서 비롯된다.
  # 소비자가 원하는 최고의 음식을 최선을 다하여 만들려는 자세가 바로 조리사로써의 장인정신(匠人精神)이다. 최선을 다한 장인정신이 깃든 제품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자의 신뢰가 높아지며 상품가치는 저절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 주어진 조건에서 최고의 음식을 최저가로 소비자에게 제공하겠다는 각오와 노력이 바로 경영자로서의 기업가정신이다. 기술혁신과 경영혁신을 꾸준히 추구하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ial spirit)이 있으면 자연히 소비수요의 변화도 예측할 수 있어 위기관리능력도 따라서 배양될 것이다.

  소비자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의사에게는 환자가, 선생에게는 학생이, 공직자에게는 가계와 기업이 그들의 소중한 소비자다. 우리 사회에서는 거꾸로 학생이 선생을 위하여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비가 적지 않다. 환자가 의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돌팔이 또한 여기저기 눈에 띈다. 민간부분이 관료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탐관오리 또한 수두룩하다.
  모든 분야에서 소비자를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는 자세를 지키려는 생산자가 많아질수록 선진국 문턱은 가까워질 것이다. 냉정하게 돌아 볼 때 장인정신과 기업가정신도 중요하지만 그 밑바탕이 되는 직업윤리부터 정착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낙하산을 타고 벼락출세한 (공기업) 사장이 들볶는 탓에 정든 직장을 버린 후배가 식당을 한다고 하기에 오랜만에 그 집으로 현장견학을 갔었다. 그 자리에 2층 건물이 세워져 있고 식당 간판은 예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두 아들 모두 유명 공과대학의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는 그냥 놀면 바로 늙는다고 하면서 작고 낡은 개인 용달차로 이것저것 동네 사람들의 잔심부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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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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