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름 있는 노신사가 방송에 출연하여 "나는 소학교 이전부터 큰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며 집안 배경을 뽐냈다. 조금만 생각하면 그 때는 일제가 마지막 발악을 하여 한국 사람들 대부분은 노예상태에서 목숨 부지하기도 어려웠던 암흑기였다.
  이는 마치 “우리 아버지는 옛날에 긴 장화를 신고 다니며 말을 타기도 하셨다.”는 것을 굳이 강조하며 제 아버지가 일제 헌병 보조원이었음을 애써 자랑하고 싶어 하는 얼간이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는 가난하고 벼슬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라에 도가 없을 때는 부자가 되고 높이 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 ; 論語, 泰白第八)" 2500년 전에 있었던 공자의 이 말씀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기본원리인 동기양립(動機兩立)의 중요성을 꿰뚫어 설명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개별 가계와 기업이 제각기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부가가치가 창출된다. 역으로 경제의 성장과 발전이 개인에게 편익을 증진시키고 기회를 제공하는 동기양립(incentive compatibility)체제가 형성된다. 예컨대 윈도우 시스템 개발은 정보처리속도를 빠르게 하는 등 사회공헌에 크게 기여하면서 시스템 개발자에게는 엄청난 부를 안겨줬다. 사회에 편익을 제공하면서 자신도 부를 축적한 빌 게이츠가 그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수용하지 못하는 미개사회에 태어났다면 그와 같이 큰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개개인의 이윤추구가 공공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비용으로 귀결되어 사익과 공익이 충돌되는 경제체제를 베버(M. Wever)는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로 정의하였다. 예컨대 담합, 부당공동행위, 내부자거래, 부실시공 같은 것은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이익을 안겨 주지만 불특정 다수인에게 크나큰 비용을 지불하게 한다. 예컨대, 개발정보를 빼돌려 땅을 미리 사두는 사람은 부자가 되지만 뒤늦게 집을 사거나 공장을 지으려는 사람들은 추가 비용을 지불하여야 한다. 더 쉬운 예로 최근 흑판납품 관련 비리로 선생님들은 얼마간의 돈을 받아썼는지 모르지만 어린 학생들의 공부능률은 떨어지고 시력도 나빠졌을 것이다. 정말 막대한 사회적 손실은 그림자도 밟아서는 아니 될 스승에 대한 존경심에 상처를 입은 어린 가슴들이다.

  식민지도 아니고 권위주의국가도 아닌 민주주의 사회에서 바보나 나쁜 사람은 있어도 천민이 어디 있겠는가? 무더위와 혹한 속에서 힘든 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건강한 시민들이 있어야 이 세상은 돌아간다. 그런데도 일부 인사들은 자기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만 골라서 해야 하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인은 배만 부르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왜정시대부터 내려오는 상투적인 걱정(?)을 하며 혀를 찬다.

  그러나 껍질이 벗겨지고 보면 이러한 사이비들일수록 소시민들과는 달리 부패, 병역비리, 세금탈루, 논문표절 같은 지저분한 일에 얼룩지고 오염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근엄한 미소를 지으며 딴 생각을 하는 이들이야 말로 자본주의 체제, 자유 시장경제를 병들게 하는 불량「천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에게는 뼈를 깎는 인내를 감수하라고 훈계하면서 정작 자신은 손톱조차 깎지 않겠다고 하면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이 같은 이중적 잣대가 사람들 사이에 공연한 위화감을 조성하면서 막연히 미워하고 질시하게 된 원인이 아닌가?

  성장잠재력을 좀먹는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려면 천민자본주의적 이중시각, 이중행태를 제거해야지 율법이나 구호로 되는 일이 아니다.
증권감독원에서 증권제도연구실장, 조사부장, 조사연구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미시간 주립대 객원연구원, 이코노미스트, iweekly 편집위원을 역임하였으며 성도회계법인 부회장, 현재 선인장학재단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비즈니스 워치 금융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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