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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학위, 잡사(雜士): ‘박사’위에 ‘잡사’있다!

세계 최고의 학위, 잡사(雜士): ‘박사’위에 ‘잡사’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회사에 취업한 ‘박사’가 직원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한다. 자신이 유학시절 갈고 닦은 전문 지식과 그 과정에서 깨달은 바를 솔직담백하게 전달한다. 강의 도중에 사용되는 언어나 개념도 전문 용어가 많아진다. 어려운 전문 지식이기에 쉽게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설명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전문용어를 사용하면서 난해하다는 인상을 남기기 시작한다. 가장 이론적인 사람은 가장 실천적인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박사의 강의가 시간이 지나면서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한다. 청중은 졸음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서서히 눈까풀에 작용하는 엄청난 만유인력은 마침내 졸음으로 연결된다. 그래도 박사는 자신의 전문 지식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 바쁘다. 이제 청중들은 거의 졸고 있거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자신이 이제까지 갈고 닦은 개념을 활용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만 감성적으로 ‘설득’되지 않는 강의는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리지만 청중들의 표정을 그리 밝지 않다. 본래 ‘박사’(博士)의 ‘박’(博)은 ‘넓다’, ‘크다’, ‘많다’를 의미한다. ‘박사’는 넓게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보통 사람에게는 존경의 대상이다. 그런데 ‘박사’의 현실적 의미는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즉 ‘박사’는 좁고 깊게 아는 사람이다. 특정 학문 분야의 세부 전공을 선택, 그 분야를 깊게 파고들어야 박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박사’는 폭 넓은 지식을 갖고 있기 보다는 특정 분야에 대해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학자다. ‘박사’는 자신이 전공한 분야에 대한 ‘깊이’는 있어도 ‘넓이’는 없다. 문제는 박사의 깊이가 다른 분야를 파고드는 다른 박사의 깊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거나 무관심하다는 데에 있다. 동일 전공 내에서도 전공간 벽과 건널 수 없는 경계가 생기면서 소통하기 어려운 형국으로 접어들고 있으며,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탐구는 물론 분과학문간 경계를 넘나드는 초학문적 탐구(trance-disciplinary)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인식의 넓이를 확산시키는 노력보다 인식의 깊이를 심화시키는 노력에 투자한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절대로 박사학위를 거머쥘 수 없다. 깊이는 박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조건인 셈이다. 어느 한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고서 자기 주관과 주장을 가질 수 없다. 확고부동한 신념과 철학으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이 바로 특정 분야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박사가 파고 들어간 지식체계와 사상적 깊이는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 극히 부분적인 설명력과 이해력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박사의 깊이 있는 전문지식이 좌정관천(坐井觀天)의 시각을 고착화시켜 자기 분야를 벗어나는 다른 분야에 대한 몰이해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박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현장이해와 현실변화에 설득력 있는 지식을 제공해주지 못할 수 있다는 자각과 반성이 필요하다. 깊이 없는 넓이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며, 넓이 없는 깊이는 대화하기 어려운 무거움이다. 한 분야를 깊이 파되 주변을 살피면서 파야 된다. 이론적 지식을 습득하되 현실변화에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박사’는 본래의 뜻대로 ‘넓다’, ‘크다’, ‘많다’는 뜻을 갖고 있는 큰 사람이 되려면 ‘잡사’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잡사는 이것저것 많은 것을 대강대충 알고 있지만 결정적인 한 가지 핵심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오리혀 잡사는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남 다른 전문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는 전공분야에도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자신의 전공분야와 어떤 구조적 관계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깨닫고 있는 사람이다. 진정한 의미의 전문성은 자신의 전문성이 실제 현장에 어떤 방식으로 접목될 수 있는지를 쉽게 풀어서 설득할 수 있는 현실성과 실천성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전문가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 자신의 전문성을 비전문가에게도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잡학지식의 풍부함이 ‘잡사’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잡학지식의 설득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깊이 파되 넓이를 잊지 않고, 넓이를 확장시키되 깊이를 추구해야 한다. 아래로 내려 뻗은 뿌리의 깊이와 옆으로 뻗은 줄기의 넓이가 풍성한 나무의 결실을 보장해준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조지 참(Jorge Cham)은 1997년부터 자신의 대학원 생활을 서너 장의 만화로 그려 웹싸이트(www.phdcomics.com)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실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고 본격적인 만화가로 직업을 바꾸고 여전히 이 싸이트에 박사과정에 겪는 희노애락을 만화로 그리면서 지금은 전세계 박사과정 학생이나 박사 이후 연구원 생활을 하는 수많은 학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는 학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정재승․진중권, 2009). 이 싸이트에 실린 만화 중에 ‘박사가 되기 위한 뉴턴의 3대 법칙’이라는 만화가 있다. 첫 번째 법칙은 ‘관성의 법칙’이다. 세상 모든 대학원생은 교수라는 외부적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계속 ‘할 일 미루기 상태’를 유지한다는 법칙이다. 지도교수의 강제적 권유가 있어야 하던 일을 멈추고 논문쓰기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저런 일로 바빠서 박사 예비 시험이나 논문계획서 또는 박사학위 논문 작성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 대학원생의 성향을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 법칙은 F=ma 또는 a=m/F라는 법칙이다. 이 법칙에서 a는 가속도가 아니라 박사과정을 마치는 나이(age)를 의미하고, m은 박사과정 학생의 성취동기(motivation)를 지칭하며, 마지막으로 f는 지도교수의 매번 돌변하는 마음(flexibility)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법칙은 박사를 마칠 수 있는 나이는 학생 자신의 성취동기가 높을수록 짧아지지만, 지도교수의 매번 돌변하는 마음 상태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법칙이다. 세 번째 법칙은 작용-반작용 법칙이다. 박사과정 중에 직면하는 중요한 고비마다 머치의 법칙처럼 항상 그것을 방해하는 일이 결정적인 순간에 터진다는 법칙이다. 박사 자격시험을 볼라치면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사태가 발생하고 논문 계획서를 발표하려는 순간에 집안에 큰 일이 겹쳐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다는 말이다.



젊은 청춘을 거의 다 받쳐서 힘겹게 박사학위를 거머쥐어도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투명하며 박사 개인의 삶은 불안함의 연속이다. 예전처럼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적어서 박사학위 자체만으로 경쟁력과 희소가치를 갖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갖은 고생을 한 것에 비하면 박사에게 주어지는 현실적인 이득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박사학위 과정에 입문하려고하는 이유는 박사학위 과정에서 공부하는 도중에 느끼는 새로운 지적 희열감이 아닐까 한다. 선각자들이 이미 걸어간 길을 쫓아가면서도 선각자의 탐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미지의 연구분야를 선정, 끊임없이 의문과 질문을 던지면서 하나 둘 씩 깨달아가는 공부의 즐거움은 그 어느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않으면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학문적 탐구여정에 두려움 없이 박사학위 과정에 뛰어드는 이유는 물질적 보상보다는 다른 것에 가치판단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을 통해서 남들이 읽지 않는 책을 뒤적이면서 나보다 앞서서 학문적 탐구활동을 수행했던 선각자들의 고민과 고뇌의 흔적을 더듬어 따라가면서 느끼는 기대와 설레임, 연구실에서 깊어가는 밤과 함께 홀로 고독한 싸움을 하면서 발견하는 진리체험의 경이로움, 연구주제나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과정에서 쏟아붓는 열정적 몰입의 즐거움은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갖은 고생 끝에 주어지는 박사학위는 이제 지도교수의 곁을 떠나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상의 의문을 파헤치고 세상 사람들에게 발견의 결과를 나눌 수 있는 독자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증표다. 박사학위는 또한 지금까지 씨름하던 연구문제를 깊게 파면서도 넓게 보는 시각을 아울러 갖추고, 박사학위를 받기 전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고뇌하라고 지도교수가 주는 일종의 독립선언서와 같다.


문제는 대부분의 박사들이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 박사학위를 획득하기 까지 보여줬던 학문적 탐구열정을 보여주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다는 데에 있다. 박사학위는 이제 본격적인 학문적인 탐구활동을 전개하는 시작을 끊임없이 반복하라는 자기암시이자 새로운 다짐을 담고 있는 이정표다. 지금까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데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특정 분야만을 파고들어 자기 전공 분야 이외의 다른 분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박사학위를 받는 동안 지도교수의 보호막과 대학원이라는 안전망 안에서 주어진 틀과 형식을 고수하는 글쓰기를 시도했다면 박사학위 이후에는 지금까지 가 보지 않은 길을 과감하게 걸어가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낯설고 두려움이 앞선다. 학문발전의 역사는 물론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문명창조의 역사에는 언제나 물론과 당연의 세계에 시비를 걸면서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소수의 몰상식한 사람이 걸어간 족적(足跡)이 담겨있다. 선각자가 걸어왔고, 걸어가고 있는 길을 예의주시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관심이 미치지 않은 곳을 포착해서 치열하게 파헤치고 주도면밀하게 분석하면서 뜨거운 열정을 불살라야 한다. 때로는 수면이 부족하고 힘에 부칠 때가 있을 것이다. 남이 걸어가지 않은 길이기에 외롭고 혼란스럽기도 하며 두렵고 불안할 수도 있다. 세상을 뒤집는 혁명적인 아이디어는 언제나 처음에 심각한 조롱과 조소, 비난과 저항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식으로 진화되어 왔다. 기존 상식을 뒤엎어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각과 시도로 학문적 탐구 여정에 몰입해야 한다. 깊이 파면서 동시에 넓게 파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색다른 시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문제를 남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넓이는 있되 깊이가 없는 박사는 천박하며, 깊이는 있되 넓이가 없는 박사는 좌정관천의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내 인생의 전부를 걸 수 있는 탐구분야를 선정한 다음 종횡무진 책을 읽어야 한다. 대강대충 책을 읽고 주만간산(走馬看山) 격으로 연구에 임하면 대강대충의 탐구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나온다. 자신의 삶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지독한 열정만이 진리 발견의 여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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