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들이대학교 저질러학과 뒷수습 전공


올바른 삶? 방황을 해봐야 방향을 잡지! 저질러학과 뒷수습 전공 유영만 교수



































스무 살의 유영만은 꿈이 없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용접공이 된 그는 기계음으로 가득 찬공장과 시끌벅적한 술집을 전전했다. 사는 건 무의미했고, 청춘은 마냥 어둡고 긴 터널이었다. 그러다 한 권의 책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생애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그의 인생을 바꾼 책은 조금 촌스러울지 모르지만 고시 체험 수기서였다. 공고생도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다는, 다소 신파스러운 에피소드가 유영만을 변화시켰다. 그는 주경야독으로 대학에 진학했고, 심지어 석·박사 학위를 마치고 교수가 됐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성공 스토리, 뻔한 해피 엔딩이라고? 지레짐작은 금물이다.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을 완성 중인 그는 “아직 삶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편하고 만족스러워도 반복되는 매너리즘의 어제와 오늘은 싫다”는 그는 여전히 새롭고 재밌는 인생에 목말라 있다. 꿈이 없던 청년은 이제 꿈을 좇는 장년이 됐다. 그리고 오늘도 책에서 또 다른 꿈을 찾고 있다. 에디터 김수연 포토그래퍼 김현희


책은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거울이다.

지금까지 작업한 저서와 역서가 모두 57권이나 된다. 굉장히 방대한 분량인데. 1994년부터책을 쓰기 시작했지. 보통은 1년에 한 권씩 냈는데 최근 10년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쓰긴 했어.왜 고스톱에도 있잖아, ‘일타다피’ 전략이라고(웃음). 강연을 준비한 내용으로 책을 쓰고, 칼럼을 묶어 책을 내는 그런 방식으로 일해서 가능했지.

책 쓰는 일 말고도 강연에 블로깅도 한다.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인가. 열정(Passion) 때문에 가능하다. 열정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복한 감정에서 분출된다.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사소하게나마  강연과 책으로 전달하고, 그것을 통해 몇몇 삶이 새로운 방향을 찾을 때 나 역시 행복해지더라고. 내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면, 그 행복이 나에게도 전해져 오는 것 같다.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을 도와서 나 역시 꿈을 이루게 되는 느낌이랄까.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던데. 많은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오래전부터 하루에 무조건 하나씩, 내 홈페이지에 A4 한 장 정도의 글을 쓰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게 썼던 글로 4권의 책을 냈다. 생각해 봐. 그렇게 매일 같이 무언가를 쓰려면 머리를 채워줘야 가능하지 않겠어. 그러니 아무리 바빠도 책은 꼭 챙겨 읽게 된다.

최근에 출간된 <다르게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는 리더를 대상으로 하고, <청춘경영>은 20대 청춘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 독자층이 굉장히 다양하다. 내가 워낙 잡식형이고 관심 분야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인생의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려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배움’은 내가 집필하고 번역한 모든 책에 담긴 이슈이기도 하다. ‘배움’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다양한 대상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알리고 싶다. 하나의 주제로 한 우물을 파듯 연구하는 건 싫다. 한 우물만 파다보면 자칫 내가 판 우물에 매몰될 수도 있거든. 넓게 파다 보면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땅을 더 깊게 팔 수도 있다.

당신에게 책은 무엇인가. 책은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자기반성의 거울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뭘 하면서 사는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책에서 자극을 받는다. 책 때문에 늘 삶이 자극된다. 책은 내 인생의 나침반, 등대와 같은 존재다.

책은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바꾸기도 한다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충북 음성에 있는 시골에서 태어났다. 중학교까지는 거기서 농사 지으며 살았다. 흙 속에서 천진하게 뛰어노는 게 좋기만 한 어린애였다. 봄 되면 나물 뜯어먹고, 여름이면 물가에서 미꾸라지를 잡아먹었다. 가을이면 밤 따먹고 겨울이면 토끼를 사냥해 잡아먹었지. 그러고보니 수렵·채취생활이 완벽하게 몸에 밴 생활이었네(웃음). 지금 돌아보면 참 아련하고 소중한 추억이다. 자연에 대한 생태학적 상상이 아마도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여느 아이들처럼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형편이 못됐다. 몇 개의 공업고등학교가 장학금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 전액 장학금을 주는 학교 중 한 곳에 입학했다. 덕분에 고교 시절엔 사건 사고가 많았다(웃음).

문제 학생이었나. 고등학교 2학년 때 후배들을 때려서 무기정학을 당했다. 당시 내가 교련 시간 중대장이었거든. 먹고 자고 함께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학교였는데 취침 시간인데도 잠 안 자고 시끄럽게 해 후배들을 모두 불러 옥상에서 얼차례를 좀 줬다. 5대 정도 엉덩이를 때렸는데, 벌 받던 학생 중 하나가 맞다가 졸도해서 큰 문제가 됐지. 결국 무기정학을 먹었다. 나쁜 의도로 때린 건 아니었는데 사건이 커져버렸다. 교무실에서 반성문을 쓰면서 보내는 나날의 연속이었지. 괴로웠다. 그러다가 홧김에 처음 술을 마시게 됐는데 설상가상 어머니도 그 해에 돌아가셨다. 돌아보면 당시 내겐 꿈이 없었다. 목표가 졸업이었으니 뭐.

졸업 후에는 어떤 일을 했나. 학교를 졸업하면 100%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 발령받은 곳은 평택의 화력발전소였다. 거기서 딱 2년 근무했지. 1년은 번 돈으로 평택, 송탄 주변의 유흥가를 돌아다니며 술만 주구장창 먹었다. 퇴근하면 술집으로 갔고, 얼큰히 취해 들어가 자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쳇바퀴 생활을 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 날 ‘나는 왜 늘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걸까?’ 하는 후회가 엄습하더라고. 무기정학을 맞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가장 암울하고 힘든 시기였다. 그런 후회를 느낄 즈음 서점에서 우연히 책 한 권을 보게 됐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이 길을>이라는 고시 체험 수기서였다. 그 수기 에피소드 중에 공고생 출신에서 사법고시에 패스한 사람의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 같은 공고생도 사법고시에 패스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지.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도 얻게 됐다.

그래서 대학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건가. 그랬지. 사법고시에 응시하려면 우선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1년간 술과 모든 인간관계를 딱 끊고 학력고사 준비에만 매진했다. 정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공부했다. 다시는 그렇게 공부하지 못할 정도로 했으니까.

대학에 단번에 합격했나. 한 번에 붙긴 했는데 원하는 학과에 응시할 수 있는 점수는 되지 않았다. 오로지 고시에 대한 생각뿐이어서 법학과에 가려고 했거든. 법학과 다음으로 생각했던 게 행정학과. 행정학과 역시 행정고시를 볼 수 있으니까 가고 싶었지. 참 단순했다. 꼭 그 두 학과에 들어가야 고시에 응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웃음). 그런데 행정학과 역시 입학하기에는 점수가 조금 모자랐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생각한 과가 교육공학과였다. 행정고시에도 교육행정 분야가 있지 않나. 그래서 교육공학과에 응시를 하게 됐다.

왜 그리 고시에 집착한 건가. 신분 상승의 기회라 생각했나. 그런 부분도 없지 않았지. 공장에서 일하면서 대학 나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접이 무척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차별적인 계층 구조에 화가 났다. 그런 감정이 생기니 오기가 발동하더라고. 나도 한 번 대학 가서 다른 인생을 살아보자는 뭐 그런 욕심이지. 이 모든 인생의 전환은 내가 그때 읽은 책 한 권 때문이었다. 당시 내가 그 책을 읽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도 평택 근처 어딘가에서 술 마시면서 공장에 다녔을걸. 책은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지만, 책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바꾸기도 한다. 참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책 쓰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

고시를 쫓다가 학자로 교육학 공부를 계속하게 된 이유는 뭔가. 고시 책은 보면 볼수록 재미가 없더라고(웃음). 반면 고시 책이 아닌, 당시에 읽었던 모든 책들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군대에 다녀올 때까지 나는 평생 제대로 책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뒤늦게 책이 그렇게 재밌는 줄 알았지. 자꾸 엉뚱한 책에만 관심이 갔다. 그때 결심을 하게 됐다. 책 읽고 공부하고 살아도 재밌겠다고. 내가 <청춘경영>에 쓴 것처럼 사람은 방황을 해봐야 방향을 잡는다. 그때 깨달은 소중한 교훈이다.

석·박사 코스를 마치고 삼성인력개발원에 들어갔다. 안정된 직장에서 대학으로 돌아가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그 결정은 삼성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렸던 건데 그곳에서 일해도 짧게는 3년, 길게는 딱 5년까지만 일한다고 생각했지. 박사 학위를 마치고 굳이 현장으로 나선 이유는 교과서적인 관념의 파편이 아니라 현장의 생생함을 제대로 체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급여나 안정성 면에서 솔직히 아까운 직장은 맞지만 그만둘 당시에는 미련이나 후회는 없었다.

스스로 ‘들이대학교 저질러학과 뒷수습 전공’이라고 소개한다던데. 이것 역시 내가 경험하면서 체득하게 된 체험적 별명이다. 어떤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다가오지 않는 미래를 수없이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겠어. 그럴 바에는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한 번 저지르듯이 무언가를 해봐야지. 해보고 안 되면 다시 하면 된다. 그것이 문제 해결에 더 빠른 방법이다.

성공? 나는 여전히 새로운 인생에 목마르다

성공 스토리의 표본 모델이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당신은 성공한 사람인가. 과연 그럴까. 결혼도 저질러서 했고, 집도 저질러 사서 뒷수습한 사람인데 (웃음). 글쎄, 다른 사람의 기준, 그러니까 사회적 잣대로 봐서는 아마 성공한 사람일 것 같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하고 즐겁긴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무엇을 궁극적으로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해보지 않은 일 중에서 더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고 싶다. 재미만 있다면 지금의 일과는 전혀 다른 아주 엉뚱한 일이어도 상관없다.

엉뚱한 일이라면. 이를테면 파리의 택시 운전사와 같은,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겠지. 조기 은퇴해서 강원도 산골로 이사가 수렵·채집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내 인생 철학은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로 살자’거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전히 새로운 인생에 목마르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자신이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 아, 그럼 나도 성공한 사람이네(웃음).

장학재단 설립이 꿈이라고 밝혔는데. 꿈 맞다.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한양대 교육공학과 학생들 중 집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1학년 때부터 전 학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장학재단을 설립해 보고 싶다. 그래서 책 인세의 일부를 학교발전기금으로 내놓고 있다. 장학재단 설립은 내가 책을 열심히 쓰는 이유 중 하나다.

극심한 청년실업시대다. 88만원 세대를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스펙의 광풍 열차’에서 뛰어내리라고 말하고 싶다. 스펙에 연연하기보다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안에서 열정을 발견해야 한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 내가 끌리는 길을 찾아야지. 무언가에 끌려야 몰입이 되고, 몰입을 해야 전율할 정도로 희열을 느끼게 된다. 학부모, 사회가 원하는 스펙의 기준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지. 그걸 찾기 위해선 수많은 시도와 체험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잠자고 있는 재능을 찾을 수 있다. 비교 대상을 밖에 두려고 하지 말고 내 안에 둬야 한다.

당신이 주창한 ‘지식 생태학’은 무엇인가. 자연 생태계의 생존 원리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를 찾아보자는 얘기지. 예를 들면 참나무가 있다. 참나무는 뿌리가 굉장히 얇은 나무다. 아주 길게 자라는 데도 나무가 넘어지지 않고 잘 자란다. 이유는 얇은 뿌리가 다른 나무의 뿌리를 엉킨 상태로 붙잡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 연관해 이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연대 중에서 가장 깊고 끈끈한 연대가 ‘뿌리의 연대’라고. 위의 연대가 아닌 아래의 연대야 말로 가장 끈끈하고 튼튼한 연대다.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네 인생사 대부분은 자연에 그 답이 있다.

지식 생태학자가 꿈꾸는 세상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 ‘즐거운 학습’ ‘건강한 지식’ ‘보람찬 성과’ ‘행복한 일터’가 순차적으로 지켜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 즐겁게 학습해야 건강한 지식이 나오고, 건강한 지식을 일에 대입하면 보람찬 성과가 나오지 않나. 그 보람찬 성과를 홀로 독식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성과로 나누면 그곳은 모두에게 행복한 일터가 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행복한 일터에서 신나게 일하는 세상을 꿈꾼다.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

1963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났다. 학교 진학조차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전액 장학금을 주는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한국전력공사 평택 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 공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던 어느 날, 고시 체험 수기집을 읽고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1년간 주경야독,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동대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교육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인력개발원에서 경영 혁신과 지식 경영에 대한 교육을 5년동안 담당했다. 삼성을 그만두고 안동대학교 전임강사를 거쳐 2001년부터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용기> <내려가는 연습> <상상하여 창조하라> <청춘경영> 등이 있다. <핑> <에너지 버스> 등 자기계발서를 번역하기도 했다

출처:
http://www.m25.co.kr/ezArticle.php?query=view&code=223&no=5465&Hosu=142&CURRENT_PAGE=1

 들이대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궁금하시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blog.naver.com/kecologist/70057321925


용접공에서 어떻게 대학교수가 되었는지 궁금하세요,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blog.naver.com/kecologist/70074833459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s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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