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장의 첫 직장은 백화점이었다. 서울상대를 나와 바이어가 됐을 때 조금만 다니다 그만 두려고 했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고 창업 할 때까지 인맥을 쌓으며 다니기로 했다.
일본 출장이 잦았고 비행기 안에서 만난 인연과 결혼했다. 스튜어디스였던 아내는 계속 직장생활을 고집했고 전업주부를 주장한 송사장은 결국 아내와 틀어져 이혼했다.

경찰서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면서 어려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송사장은 「예쁜 여자보다 현모양처를 소원했고 절대 이혼은 없다」는 맹세를 했건만 그 맹세를 깨면서 「그래도 아이들은 없으니까」 하며 자위했다.
창업과 더불어 재혼했다. 여성의류사업을 하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디자이너를 반려자로 맞이했다.

프랑스와 일본의 백화점에서 여성복 샘플을 구해와 비슷하게 만들어 백화점의 바이어에게 납품하면서 사업은 욱일승천지세로 잘 됐다. 똘똘한 아들이 태어났고 오래지 않아 사옥을 장만했다.
스스로 바이어의 봉이 됐다. 말단직원(특히 바이어에게) 술, 밥 사는 것은 기본이고 용돈에 결혼식, 장례식 등의 경조사비를 놀랄 정도로 제공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바이어의 자리이동과 퇴사에 따른 「새 바이어」와의 물갈이가 잦아졌다.
그런 과정에서 송사장의 인간성이 드러나버렸다.
「별 볼일 없게 된 바이어」는 쓰레기 취급해 버렸다.
전화조차 받지 않았고 만나자고 찾아와도 「없다」로 일관했다.

송사장의 명은 기축(己丑)년, 병자(丙子)월, 정유(丁酉)일, 기유(己酉)시. 대운9.

송사장은 동창들을 잘 활용했다.b국세청, 감독원, 국회 등등에서 출세한 동문들을 잘 관리했다. 돈이면 만사 오케이 였다. 골프, 술집, 선물, 돈봉투에 「노골노골」해 지지 않는 인사는 없었다.

「이만하면 성공했다」고 여겼고 「계속 사업은 잘 될 것이다」하며 안심하게 된 송사장은 「교만 방자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원래 술을 좋아했던 송사장은 접대용 고급술집이용이 잦았는데 「새끼마담」에게도 홀려 들게 됐다.
애지중지 키워왔던 외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 친구들에게 몰매를 맞은 뒤 뇌에 이상이 왔다.

송사장의 성공 뒤에 나타나기 시작한 불행은 고인이 된 아버지가 심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간교함, 중상모략을 통해 경찰서장이 되면서 동료들을 엄청 아프게 했고 본처와 이혼하고 첩을 본처로 만들어 토색질한 재산을 물려 준 것 외에 깡패와 한통속으로 놀아나고 운수업자의 앞잡이가 되어 서민을 울린 사실은 흘러내리는 물처럼 아들을 통해 밑으로 유전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아들을 불구가 되게 한 것과 아내를 왕따 시킨 다음에 송사장 자신에게 불어 닥칠 기운이 중풍임을 알기나 하는지……

부자가 되게 만든 섬유패션업의 뿌리는 목기(木氣)다. 그 목기가 병으로 작용하면 중풍, 치매로 이어지게 된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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