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아침에 아들 내외가 지난달(8월 중순)에 낳은 아들을 데리고 왔다.
무척 반가워야 함이 당연한데 그렇질 못했다.
어머니는 「왔냐?」 그러고는 그만이었다.
시큰둥한 환영(?)이었다.
아버지는 인기척조차 없었다.
아들 내외는 「괜히 왔다」고 후회했다.
이렇게 냉랭할 줄이야...
「병을 핑계대고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금방 가버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지난해 봄 아들이 늦 장가를 들때만해도, 며느리가 아들보다 4살이나 많은, 마흔이 훌쩍 넘은 노처녀 였어도, 잔치 분위기는 지속 됐었었다.
지난 8월의 한창 더위때에 아들을 낳은 며느리가 예쁘고 장해 보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랬던 것이 「아들의 아들 이름」을 둘러싸고 의견 충돌이 한 바탕 있은 뒤로 가족간의 저기압이 형성 됐다.아들은 아들의 이름을 멋지게 잘 지었다고 생각, 아버지에게 상의 한마디 없이 「이렇게 지었노라」고 통보를 해 버렸다.
아버지는 아들의 태도에 분노했다.
무시당했다고 여겼다.
통보(?)를 받은 이름도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빌다시피(?) 손자의 이름을 바꾸자고 종용했다.
아들 내외는 단호히 거절 했을 뿐만 아니라 재빨리 호적에 올려버렸다.
「이름 가지고 더는 왈가왈부」 할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그런 뒤로 아들 칭찬에 주위의 핀잔도 꽤나 들었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저주(?)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
“저 놈의 새끼는 누굴닮아 저렇게 고집이 센지 모르겠다”느니, “이놈아, 네 아들도 너를 닮아 말 안 듣고 고집셀테니 키우면서 속 좀 썩어 봐라”라느니, “어디 장가 갈 데가 없어서 늙어서 시집 못 간 늙다리 한테 장가가서는 하는 짓이라고는...”하면서 악담에 악담을 거듭했다.왜 이렇게 돼 버렸을까?
갓 태어난 아이는 집안에 새로운 기운을 끊임없이 몰고 온다.
아이를 잘 낳으면 부자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반대로 잘 못 낳으면 집안에 평지풍파를 불러옴은 물론이요, 심하면 죽음에 이르는 재앙도 초래한다.
이름의 좋고 나쁨도 운명과 필연적 관계를 맺는 법이다.
이름을 바꿨는데도 잘 못 바꾼 것을 허다하게 보아 왔다.이번 아들의 명은 계사(癸巳)년, 경신(庚申)월, 임자(壬子)일, 신축(辛丑)시, 대운 2.지지(地支)합.충(合.冲)의 기운위에 겁재와 인성이 중첩해 있다.
명불호(命不好)가 심한 편이다.
아주 가난하게 살 것 같다.
쓰레기통속이 내 집이라고 할만큼 고단한 인생이 되기 쉬운 것이다.
부모도 갈라 놓을 수 있으니 아주 잘 못 낳았고 잘 못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종교인으로써 수도하면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함으로 길을 찾아야 할듯하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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