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아주 창피스러운 첫 경험의 가치

해보지 아니한 것을 처음 하고자 할 때의 망설임과 두려움, 주저하는 모습과 공포의 떨림, 두근거리는 가슴의 파동과 화끈 거리는 얼굴의 창피스러움. 이런 것들은 모두 성장을 위한 경험이며 도전하는 자만이 겪을 수 있는 느낌이다.

운전면허를 딴 후, 초보운전이란 글귀를 엉성하게 자동차 뒷면 유리창에 부치고 처음 혼자서 차를 끌고 출근하다가 신호등을 위반하여 교통경찰에게 걸렸을 때 제일 무서운 사람은 경찰이 아니라, 옆으로 멋지게 달려 가는 출근길 자동차 운전자들이다. 그들이 나를 보고 얼마나 우습게 생각할까?

온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마치고 여행지에 도착해서 마음껏 돌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어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자야 할 시간, 기쁨과 환희와 호기심보다도, 두려움과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두 사람은 아주 불편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그래야 죽을 때까지 함께 살 수 있다.

명함을 두둑하게 채워 넣고, 넥타이를 바로 매고, 머리는 단정하게 빗고 약간의 향수도 뿌리고, 영업사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처음으로 고객회사를 방문할 때의 두려움과 불안정한 모습은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무슨 말부터 시작했는지, 어떤 감각으로 악수를 했는지 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개발한 솔루션이나 상품을 설명하기 위해 고객회사 임원과 간부사원들을 모아 놓고 제안설명(Presentation)을 할 때, 내 목소리가 얼마나 떨렸는지, 정말 해야 할 말은 제대로 한 건지, 고객의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얼떨결에 인사를 나누고, 다음에 찾아 뵙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두 번 다시 연락하지 않은 사실을 그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명함을 책상 위에 놓고 나왔다는 말을 하지 못해 “아직 인쇄가 되질 않아서…”

단 둘이 저녁식사나 하자고 약속해 놓고, 소속부서 직원을 모두 데리고 나와 빙 둘러 앉는 고객이 술을 좋아 한다는 사실을 알아 차리고는, 마시지도 못하는 자신이 미워지기 시작하면서 억지로 술잔을 들이키며 배짱을 부린 탓에, 그보다 먼저 취해서 횡설수설하다가, 그가 원하는 대로 1차 2차를 모시고 갈 때, 그래도 정신은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에 들어 가 지갑을 뒤적이며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세어 보고, 비싼 양주를 시킬까봐 조마조마 하는 모습을 그가 눈치 챌까봐 얼마나 가슴을 조아리고 있는지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던, 받기에만 익숙한 “갑”의 뻔뻔스러운 얼굴은 지금 잊지 않고 있다.

무언가 내뱉고 싶은 마음이 있어 글로 옮기고, 그것들을 모아 정리를 할 때,부풀어 오르는 희망과 꿈의 참맛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다. 쪼가리 글들을 모아 책을 내고 싶어 찾아 간 출판사에서 거들떠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종이조각만 뒤적 거리며, 어서 빨리 나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챘을 때의 부끄러움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발품을 팔고 자존심을 뭉개며 뛰어 다녀도, 아무도 책을 만들어 주려고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인쇄소를 찾아 가서 내 돈을 주고서라도 겉표지 한 장 달랑 씌워오면서 당하는 수모는 훗날 아름다운 추억일 수 있다. 책 같지도 않은 책을 책꽂이 옆에 쌓아 놓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래도 기특한 생각이 들어 자주 눈이 가고, 자꾸만 펼쳐 보면서,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다는 건 아직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얄팍한 욕망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표현의 욕구를 채우고 싶어 안달이 났을 때, 결국 두 번째 사고를 치고 싶어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한 번 멋진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에,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지 짬을 내어 쓰고 지우고 하기를 수 백번. 결국 또 다른 원고뭉치를 들고 이젠, 자신 있게 출판사를 찾아 간다. 전화만 해도 출판사 직원이 직접 방문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너무 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여기 저기 소문을 내려고 하는데, 아직도 책이 서점에 깔리려면 한 두 달 더 기다려야 한다나? 젠장, 뭐 그렇게 오래 걸린담? 전문서적도 아니고 탁월한 작가의 책도 아닌 걸 갖고, 뭘 그렇게 꼼지락 거리고 있는지. 그 세월이 너무 길어 참지 못하고 몇 번씩 전화를 하고 팩스를 보내고, 찾아 가서 점심을 사주고…

“저자님, 오늘 책이 나왔는데, 광화문 서점 13번 코너에 가 보시지요? 증정도서는 보내 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오셔서 가져 가실래요?”

아니, 나보고 기다렸다가 받으라고? 몇 시간을?

절대 그럴 수 없지. 모든 바쁜 일을 제쳐 두고 출판사로 달려간다. 움집 같은 작은 출판사에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기만 해도 얼마나 좋은지. 두 뭉치의 책을 받아 들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모습을 그들은 늘 보아 온 터인지라, 별로 기쁜 내색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그들에게 서운한 생각이 든다.

좀 더 많이 주지 않고, 겨우 50권.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기뻐하며 들여 놓은 책보따리를 온 식구가 둘러 앉아 구경을 한다. 한 권 두 권 빼어내어 펼쳐 보는 애들과 아내 앞에서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성질 급한 아내가 또 잔소릴 한다.

“아니? 사진이 이게 뭐 이렇게 나왔어요? 묻지도 않고 아무거나 갖다 주었네. 그리고, 이 줄은 빼라고 했는데…” 자기가 작가인 것처럼 더 난리다.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 온 책인데, 지금 그렇게 야단을 치면 해결이 된다는 거야 뭐야? 누가 뭐래도 난 기쁘다.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얼른 몇 권 빼 내어 나누어 줄 생각부터 한다.

교수님, 친구, 동창생, 선배, 사장님, 임원들, 동료, 여사원… 100권도 모자라겠네. 아니지, 우선 신문사에 먼저 보내야지. 신문에 크게 실려야 소문이 빨리 나지. 책을 내게 된 이유, 이 책을 읽어야 할 독자층과 그들의 특징, 책의 유용성과 가치 등을 아주 정교하고 간결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정중한 편지와 보고서로 작성한 후, 책 한 권을 예쁘게 포장하여 10뭉치를 만든다. 밤이 아홉이라도 빨리 배달될 수 있도록 중앙우체국으로 달려가 빠른 등기로 부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매일 아침 신문을 펴 들며 “책 소식”란을 뒤적거리지만 어디에서도 내 책의 표지나 기사는 찾을 수 없다. 도대체, 책 담당 기자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가? 아니지, 직접 찾아 가야지. 창피를 무릅쓰고, 비를 맞아 가며 신문사를 찾아 간다. 난생 처음 찾아 간 기자실은 어찌나 어지럽고 지저분한지. 이런 곳에서 어떻게 그런 말끔한 기사를 쓸 수 있단 말인가? 책 쓴 취지를 설명하고 좀 더 오랜 시간 기자와 이야기 하기 위해, 준비해간 원고에 행동 시나리오까지 점검하면서 들어 섰지만, 그들은 간단했다.

“옆에 놓고 가세요.”

모든 걸 포기하고 신문사를 방문했다는 사실 조차 까마득히 잊은 지 며칠이 지날 무렵,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온다.

“작가님, 어제 신문에서 작가님 기사를 보고, 책을 샀는데, 어찌나 재미있고 감동적인지, 오늘 다 읽었거든요. 제가 여쭙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한 번 만나 주실 수 있나요?”

그래, 이렇게 사는 거야.

여기 저기 찾아 다니며 각종 신문 며칠 분을 모아, 샅샅이 뒤져 보니 서너 가지의 신문에 기사가 실려 있다. 한 두 줄짜리도 있고, 책의 표지와 내용이 요약되어 실린 기사도 있고, 내 이름도 쓰여 있고…

또 며칠 있으니, 이상한 곳에서 e-mail 이 온다. “다음 주에 우리 기관에서 교양강좌가 있는데, 오셔서 2시간만 강의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상자는 …”

그럼 그렇지. 강사료 이야기는 묻고 싶지도 않다. 아니, 강사료는 안중에도 없는 거지. 내가 언제 남들 앞에서 강의 같은 걸 해 본적이 있는가? 이 기회에 해 보고 싶었던 사고 한 번 쳐 볼까? 물어 물어 찾아 간 언덕의 조그만 회의실엔 겨우 8명이 둘러 앉아 있다. 여기서 강의를 하라고? 그냥 담소나 나누다 가야겠네. 아니지, 그래도 잘 해보아야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2시간이 지난다. 횡설 수설, 우왕좌왕, 진땀만 흘린 것 같은데, 수고하셨다며 흰 봉투를 거네 준다. 그 자리에서 열어 보고 싶지만, 어디 강사 체면에.

시동을 걸기 전에 봉투부터 열어 보니, 겨우 5만원. 시간당으로 계산을 한 건가, 그냥 위로금으로 주는 건가? 아니면 수고비인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일로 전화를 걸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 품위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 시작된 기업체나 대학교 강의가 “이젠 제법인데?”라는 평가를 기대할 때 즈음, 또 엉뚱한 연락을 받는다.

“여기 신문사인데요. 인터넷 신문에 작은 칼럼 하나 맡아 주시겠습니까?”

“여기 월간 잡지사인데요. 무겁지 않은 소재로 글 몇 편 써 주시겠습니까?”

정말 기쁜 일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고정 칼럼을 맡아 달라니, 나중에 창피를 당하고 웃음거리가 될지언정, 일단 시작해 보는 거다. 내 마음대로 주제를 정하고, 이런 내용 저런 형식의 글을 마음대로 써 내려 가 본다. 몇 달을 쓰다 보니 이젠, 바닥이 드러난다. 그래도 좋다. 하는데 까지 해 보는 거지 뭐.

컴퓨터를 전공했다는 사람이 인사 교육업무를 해 보게 되고, 지구촌을 돌며 영업을 해 보고, 많은 젊은이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잡지와 신문에 작은 생각들을 올리면서 느끼는 게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무겁고, 딱딱하고, 긴 글을 싫어한다는 거다. 가볍고 재미있고, 짤막한 글만 좋아한다고 한다. 조금만 긴 글을 쓰거나 제목에서부터 튀지 않으면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살기 어렵고 견디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면서, 해야 하고 배워야 할 일이 많다고 하면서, 세계화와 국제화를 부르짖으면서, 그저 입맛에 달고, 소화시키기 쉽고, 당장 이해하기 쉬운 것만 선택하려 한다면, 정작 배워서 알아야 하고 몸에 익혀야 하는, 어려운 학문과 현실의 경험은 어떻게 쌓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려운 제목의 칼럼은 외면하고, 정말로 만나야 할 고객을 부담스러워 하고,

깊이 있게 생각해서 사용해야 할 언어를 기피하면서, 가벼운 인터넷 용어만

선호하고, 정보검색을 한답시고 웃음거리만 찾아 다니느라 아까운 시간 다

보내고, 어영부영 고민만 하고 있으니, 세계적인 경쟁사회에서 협상에 밀리

고 의사소통에 실수를 반복하며, 자기가 선택하고 싶은 길은 좁아지는 것이

다.

그러면서 고민한다.

“정말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좋은 직장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많은 보수를 받고 싶은데…

자신의 적성과 능력은 갑자기 발견되지 않는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유전형질을 이어 받아 어느 정도의 끼와 천성은 타고 나겠지만, 짧은 경력과 얄팍한 지식으로 전공이 틀렸느니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느니 하는 말은 젊은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 한국강사협회 회장 역임, 코리안리 재보험(주), 데이콤ST 근무, (주)스카우트 부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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