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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유감



   물망초 유감


  물망초 (勿忘草)는 영어로는 forget-me-not  독일어로는 Vergissmeinnicht
(베르기쓰마인니히트) 학명으로는 Myosotis scorpioides 이다.
사진의 물망초 꽃은 양수리에 있는 <산귀래>에서 찍었는데 키가 20 cm
정도이고 잎도 볼품 없고 꽃도 지름이 4-5mm 정도밖에 안 된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크게 떠야 겨우 보인다. 그런데 꽃의 색깔은 아주 오묘하다.  물망초는 우리나라에는 흔하지 않은 화초이다. 화초라기보다는 서양잡초 비슷하다. 꽃의 크기는 같은 지치과인 우리나라의 참꽃마리보다는 작고 꽃마리보다는 조금 크다.

  물망초는 지치과 다년초로 유럽원산이고 관상용으로 가꾸고 있다. 전체에 털이 많고 뿌리에서 모여 나온 잎은 도피침형이고 잎자루가 있고  줄기에서 달린 잎은 잎자루가 없으며 긴 타원형이다. 꽃은 5-6 월에 피고 하늘색이며 한쪽으로 풀리는 총상화서이다. 꽃잎은 다섯으로 갈라진다.  독일의 전설에 따르면 옛날 한 쌍의 남녀가 다뉴브 강가를 걷다가 강 한가운데의 섬에 피는 이 꽃이 아름다워 남자가 애인에게 주기 위하여 뜯어가지고 헤엄쳐 오다가 급류에 휘말려들면서 이 꽃을 애인에게 던져주고 <나를 잊지 말라> 는 한 마디를 남기고 물에 빠져 죽었다. 그녀는 사라진 애인을 생각하며 일생동안 그 꽃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이 꽃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이다.
 
  이 물망초는 꽃의 크기가 작아 화려한 화초를 기대했다가 실물을 보면 실망을 하는 수가 많다. 무더기로 피어 있으면 조금 눈에 띌까 그렇지 않으면 눈에조차 잘 띄지 않는다. 이 물망초의 전설은 아름답지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강가를 거닐다가 섬에 있는 이 꽃이 눈에 띄고 아름답다고 여길 만큼 잘 보였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꽃의 개량종이면 몰라도 전설의 당시 야생종이면 꽃의 크기가 상당히 작아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의 꽃도 지름이 고작 4-5 밀리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지치과의 컴프리나 당개지치 이외엔 대부분의 지치과 식물은 키도 작고 잎도 작고 ( 속명 Myosotis는 생쥐의 귀라는 뜻이다. 그처럼 잎이 상당히 작고 부드럽다) 꽃도 작다. 그런 까닭으로 이 전설은 구전되면서 상당히 수정 변화되었든지 아니면 심오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섬에 물망초의 군락이 있었을 것이다. 군락이라면 멀리서 볼 때 꽃이 무더기로 보여서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감탄을 하면서 남자에게 은근히 그 꽃을 꺾어오기를 바랬을 것이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가 원하는 것이기에 물로 뛰어들어 섬으로 갔다. 그러나 가서 꽃을 보니 실제로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꽃이었다. 남자는 실망을 하면서 다시 강을 헤엄쳤다. 그러다가 힘이 빠져 익사한 것 같다. 갈 때는 없었던 급류가 갑자기 생길 리도 없고 심장마비라면 가다가 걸렸을 것이다. 돌아오다가 익사한 것은 꽃에 대한 실망도 있겠고 힘이 빠져 익사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 남자의 말 한 마디이다. 과연 그 남자가 <나를 잊지 마세요> 라고 했느냐이다. 독일어로 베르기쓰마인 <나를 잊으세요> 다음의 말이 니히트(nicht)이다. 영어로도 마찬가지로 forget me <나를 잊으세요> 다음의 말이 낫(not)이다. 헤엄을 쳐 오면서 힘이 점점 빠지고 강가는 멀고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서서히 느꼈을 것이다. 적어도 갑자기 몇 초 안에 죽어갔을 리는 없다. 그때에 과연 남자가 하는 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 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자신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는 것인가? 서양사람들의 전설이기 때문에 서양사람들의 심정을 나타낸 것이라면 이야기는 쉽다. 그러나 적어도 헤엄을 쳐서 섬에 가 꽃을 꺾어올 정도로 사랑한 여자라면,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그 여자의 행복을 빌어주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그 남자가 한 말은 맨 뒤의 부정사 nicht 나 not 이 붙지 않은 forget me  또는  Vergiss mein 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죽은 자기를 생각하면서 평생을 잊지 않고 추억을 하기를 바라는 연인이 있을까? 대부분의 남자들은 어차피 자기는 죽어가니까 <나를 잊고 > 빨리 새 생활에 적응하여 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것이다. 정말 사랑이라면 그렇지 않을까? 이 전설은 꾸며진 부분이 있다면 살아남은 여자가 붙인 거짓말이다. 자신의 헌신이나 수절을 예상하면서 그 담보로 남자가 <나를 잊지 마세요> 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실제로 남자는 Vergiss mein      (forget me) 라고 했는데 거리가 멀었든지 여자가 그러리라 착각을 했든지 잘못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남자가 물에 빠지면서 내는 숨막히는 단발마가 nicht 로 들렸을 가능성도 많다.

 

 

 



















이제 이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자. 여자는 사실이 어떻든지 이 전설을 그대로 믿고 싶어한다. <나를 잊지 마세요>,  forget-me-not,  Vergissmeinnicht, 물망초. 그러나 남자들의 속마음 또는 진실한 사랑은 <나를 잊으세요>, forget me, Vergiss mein이다. 여기에서 남자와 여자가 사랑의 본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인식의 다름을 알 수 있다. 여자는 잊혀진다는 것에 대하여 치명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다. 외국 시인의 시 중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가장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는 구절이다. 여자는 순간순간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사물과의 관계를 매번 설정 확인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여자는 자신의 처지나 하는 일이나 환경이 나쁘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이 주변의 사람들과 어떤 관계에 있다는 확신만 서면 어떤 어려운 경우도 헤쳐나가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주변과의 관계에서 실망하고 실패했을 경우 여자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여자는 남자에게 잊혀진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형벌이 될 수가 있다. 자신이 그러하므로 남자들도 여자처럼 잊혀진다는 것에 대하여 두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전설 속의 그 여자는 남자가 죽어가면서 한 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 라고 했을 것이라 믿고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잊혀진다는 것을 그리 치명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는 주변의 사물과 어떤 관계를 갖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그 주변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계와 역할은 비슷한 것 같지만 아주 다른 개념이다. 사랑하는 남녀 한 쌍을 놓고 볼 때 여자는 자신이 <그 남자의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남자는 < 그 여자에게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가 중요하다. 같은 방식으로 여자는 남자를 < 저 남자는 나의 무엇이냐> 가 중요하다. 남자는 여자를 < 저 여자는 나에게 무엇을 할까> 가 중요하다. 남자는 <역할>이 둘 사이의 관계의 척도가 되고 여자는 둘 사이의 <관계>가  무엇이냐가 둘 사이의 역할을 만들어 낸다. 남자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볼 때 자신의 존재를 불쌍히 여긴다. <어떤 역할>을 할 수 없으면 둘 사이의 관계를 의심한다. 그러므로 남자는 어떻게 하든지 <어떤 역할>을 하려고 능동적으로 발버둥을 친다.

 

  사랑한다는 것 – 그것은 여자나 남자에게 똑같이 지고지순한 명제이다. 그러나 그 사랑의 접근방식과 확인방법은 남녀가 완전히 다를 수가 있다. 어느 여류문인이 쓴 글에 다음과 같은 독백이 있다. [때때로 헤어지는 사람한테 마지막으로 물어보는 말이 <나를 사랑했나요?>이다. 옛날 어느 순간에는 누구보다 사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헤어지는 시점에서 과거의 감정이 왜 중요한가? 어떠한 이유이든 헤어지는 지금의 감정이 중요할 것이다. <그럼 지금은 사랑하나요?>라고 물을 것이다. 사랑하면 절대 헤어질 리가 없겠지. 물어보나 한 말을 사람들은 때때로 버림받았다는 심리적 불안감에 헤어나고 싶어 연인에게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본다. <나를 정말 사랑했나요?>]  이 말은 뒤집으면 < 나를 잊지 마세요> 랑 똑같은 말인 것이다. <물망초> <나를 잊지 마세요>    <나를 정말 사랑했나요?> 이 말은 모두 여자들이 하는 말이다.

 

  남자들은 그런 말을 좀체 하지 않는다. <있을 때 잘 해> 이 말은 당연히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하는 말이다. 여자들은 어떤 <관계>만 확인을 하면 만사 사랑 오케이이다. <저 남자는 나의 사랑이다> <나는 저 남자의 아내이다> < 나는 저 남자의 애인이다> 여자는 이 말이면 모두 해결이 된다. 행동이나 자세나 생각은 모두 그 말  뒤의 가치이며 부수조건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다르다. 여자나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둘이 <애인>이냐   <사랑>이냐 <남편>이냐가 결정된다. 그래서 남자들은 <애인>이라고 생각하면 <애인>의 역할을 하려고 몸부림을 친다. <어떤 역할>을 못 할 때 남자들은  <관계>를 의심하고 부정하고 깨려고 한다. 남자들은 <역할>을 늘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 <역할> 속에서만 자신의 <관계> 즉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보지도 만나지도 못하면서 몇 년  몇십 년씩 기다릴 수 있어도 남자가 여자를 못 기다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 <역할> 때문이다.

 

  여자는 관념만으로, 또 <나는 누구의 무엇이다> 라는 <관계>에 대한 착각만으로도 사랑을 느끼고 행복해지고 사랑을 기다릴 수 있지만 남자들은 여자에게, 또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역할>을 할 때에만 사랑을 확신하고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이 엄연한 차이에서 남녀 둘의 행복과 불행이 교차된다. 물망초라는 외국의 화초를 보면서 남녀의 존재의 확인방법 또는 사랑의 접근방법에 대하여 곰곰 생각을 해 본다. 나는 과연 <물망초> 라고 할 수 있는가? 내 여자가 나에게 <물망초>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으로도 계속 여자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주장해야 하는가?   참으로 어려운 숙제이다.  


                               

은희 물망초

 

1. 야생화 사진을 찍고 시를 씁니다
2. 우리것을 좋아하여 글로 남깁니다
3. 시인의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봅니다
4. 솟대문학 편집장을 하고 있습니다
5. 하모니카 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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