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을 해 보신적 없는지요? 다 똑 같은 몸인데, 왜 특정 부위의 신체(특히 성기)는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일까요? “부끄러우니까”, “규범에 어긋나니까” 등 답은 명백하지만, 명백한 답이 있는 것일수록 따지고 보면 그

이유가 그리 논리적이지는 않습니다.

 

한여름이라면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몸에는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굳이 체온을 높이는 옷을 몸에 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옷을

모두 벗고 광화문 사거리를 활보하기 위해서는 매우 따가운(혹은 뜨거운)

시선을 감내해야 합니다. 옷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오직 규범에 어긋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의 마음이 불편할 뿐입니다.

 

부끄러움과 같은 사회적 감정과 노출을 규제하는 사회 규범은 특정 집단 내에서 가치를 공유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즉 그 자체로서의 기능이 있다기 보다는 사회적 기능 때문에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특정 부위의 신체를 가리는 것이 어떤 사회적 기능이 있는 것일까요?

 

특정 부위를 가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 된 것은 사회적으로 인간관계의 형성을 도와주는 등의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이유 중 하나가 남녀간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오직 한 사람만 눈에 들어옵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면, 아직 사랑에 빠진 게 아닙니다. 오직 한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둘 만이 공유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서로에게 맨 몸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맨 몸을 보여주는 것이 오직 둘만의 관계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은 그 둘의 맨몸을 보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 전제를 사회가 규범으로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출을 억제하는 규범의 장점은 또 있습니다. 관계의 즐거움을 배가합니다.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기대수준을

낮추거나, 성취수준을 높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어도

기대수준에 못 미치면 맛있는 식사가 될 수 없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이유는 정말로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소문을 통해 기대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식사라도 3일 굶은 사람에게는 그 어느 진수성찬보다 맛있는 식사가 됩니다.
 

이성의 맨 몸은 자극입니다. 보면 흥분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는 둔감화라는 작용기제가 있습니다. 자극에 매번

같은 수준의 흥분으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이성의 속살이라는 자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의 맨 살을 자주 보게 되면 둔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친밀한 관계에서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드는 셈입니다.

 

노출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가슴과 배, 허벅지 정도는 가리고 다니는 것이 쾌락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니스커트 입었다고 단속할 필요는 없지만 말입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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