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늙는다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 모두

있습니다. 영어의 “senile”이란 단어는 “노인의” 혹은 “노년의” 라는 뜻이 있는데, 동시에 “노망한”이란 의미로 함께 사용합니다. “노년”에 “노망”이란 뜻을 넣지

않는 우리로서는 “senile”이 꽤 당혹스러운 단어이지만, 우리말에도

“늙었다”는 의미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의 말뜻 자체에는 나이의 적고 많음만이 있지만, 후자는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늙었다는 것에도 긍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경륜” “지혜”와 같은 말은 젊은이보다는 늙은이게 더 어울립니다. “노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리스에 “집에 노인이 안 계시면 빌려서라도 모셔라”라는 속담이 있고, 이스라엘에 “노인을

모신 가정은 길조가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노인의 경륜과

지혜는 오래 전부터 높이 사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늙음에 노망과 지혜가 함께 엮여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노망과

지혜는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는 노화 과정과 나이 들어 경륜이 쌓이는 과정이 일정부분 겹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 생각, 느낌은

우리 두뇌 안에 촘촘하게 모여있는 신경세포의 발화와 연결이라는 작용을 통해 이뤄집니다. 발화는 신경세포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전기화학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신경세포에게 발화하면서 연결망을

이룹니다. Axon(축색)이라고 하는 아주 가는 신경섬유가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전기신호를 전달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경륜이 쌓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신경세포들의 연결망이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두뇌는 매우 효율적이어서 사용하지

않는 신경세포의 연결망은 끓어버립니다. 즉, 지속적으로 지식을

쌓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등 신경세포들이

발화하도록 해야 신경세포 사이에 연결망이 생기고 유지됩니다.

 

축색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전기신호라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기신호는

거리에 반비례에 약해집니다. 중간에 전기신호가 유실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선을 절연체로 감싸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신경세포에도 myelin sheath(수초)가 축색을 감싸고 있어, 신경세포체에서 발화된 전기신호가 유실되지 않도록 합니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수초가 유실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수초가

유실되면 신경세포체에서 발화된 전기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과 마음이 느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뇌의 형성은 생명유지에 핵심역할을 하는 영역(보고, 듣고, 움직이고)부터

시작해, 생명유지에 덜 핵심적인 영역(조절하고, 종합하고, 판단하고, 계획하고)의 성숙으로 이어집니다. 조절 종합 판단 계획 등의 기능을 실행기능(executive function)이라고 합니다.

 

청소년들이 몸은 어른이지만, 행동이 미숙한 이유는 생명유지에 덜 핵심적이지만

사회활동에는 핵심적인 실행기능이 성숙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청소년의 두뇌는 전전두엽 신경세포가

수초화가 덜 됐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단견이고, 행동이 충동적인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수초가 유실되기 시작합니다. 뇌의 성숙과는 반대로 생명유지에

덜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세포에서 시작합니다. 조절하고, 판단하고, 계획하는 전전두엽의 실행기능이 먼저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전전두엽 신경세포의 수초가 유실되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어도

판단이 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전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진다 해서 경륜도 함께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은 두뇌에 이곳 저곳에 나눠 저장돼 있고, 뇌의 안쪽에 있는

해마(hippocampus)에서 이 기억들을 통합(consolidate)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몇 살부터 전전두엽 신경세포 수초가 유실되기 시작할까요? 사회의

발전단계에 달려 있을 겁니다. 50세만 넘어도 폭삭 늙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80세가 되도 젊은이 못지 않은 기민함을 유지하는 사회가 있습니다. 이

차이에는 의약기술의 발달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옛날에는 나이 60을

넘기는 것이 대단한 것이어서 잔치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요즘 환갑 잔치하는 사람 없습니다.

 

문제는 사회제도와 문화가 의약기술의 발달을 따라가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노화에는

신체가 늙어가는 생물적 노화, 마음이 늙어가는 심리적 노화, 사회관계가

늙어가는 사회적 노화가 있습니다. 의약기술은 신체적 노화를 늦춰줄 수 있지만, 심리적 노화와 사회적 노화까지 막아주지는 못합니다.

 

요즘 환갑 잔치하는 사람은 없지만, 환갑 잔치하던 시절의 제도는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년퇴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물론 정년퇴직

자체가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정년이 있어 후배에게 자리를 내주는 제도와 문화는 필요합니다. 문제는 퇴직 이후 아주 오랜 시간 할 일을 찾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고령화의 문제는 2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전두엽의 수초가 본격적으로 유실되는 시점에서 제공하는 노인복지입니다. 전통적으로

고령자에 대한 복지는 이쪽에 맞춰져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퇴직 이후 수초가 유실되기 이전까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노동복지입니다.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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