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숫자의 단위는 한정돼 있습니다. 일정 단위 이상을 벗어나면 그 숫자가 얼마나 큰지 가늠하기 어려워집니다. 생생하게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1천억과 1천조는 무려 0이 4개나 차이가 있지만, 1천억과 1천조의 차이에 대한 느낌은 1천원과 1천만원의 차이만큼 생생하지는 않습니다. 똑같이 0이 4개 차이가 있는데 말입니다. 1천원이나 1천만은 우리가 생생하게 경험하는 단위인 반면, 1천억과 1천조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1경이란 단위는 어떻습니까? 감이 거의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표시하면 어떻습니까?  10,000,000,000,000,000

0이 16개입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이 1.12조달러입니다. 환율 1050원 적용하면 1176조원입니다. 한국이 10년 정도 총생산하면 1경원을 조금 넘기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이란 단위를 사용한 뉴스에 접했습니다. 북한이 정주에 있는 희토류개발을 위해 사모펀드와 계약을 체결했는데, 정주의 희토류 가치가 무려 6경원을 훌쩍 넘긴다고 합니다. 제가 단위를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봤습니다. 65조 달러라고 돼 있습니다. 달러니까, 여기에 1050을 곱해야 합니다.
(마이닝위클리에 보도자료가 올라와 있습니다.)
(북한 희토류 매장량이 세계 2위라는 기사도 있습니다.)

이는 북한 지하자원 가치가 6천조원이라는 기존 추정치보다도 무려 10배나 많은 수치입니다. 그것도 정주 한곳의 가치입니다. 아직 탐사단계이기 때문에, 6경이란 숫자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풀려진 수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묻힌 자원이 희토류라고 한다면, 6경이란 숫자가 그리 과장된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희토류는 전자산업에 필수적인 광물입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전자산업이 에너지산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전기의 저장과 태양광발전 때문입니다.

테슬라가 지금 아무리 잘나가도 전기차는 틈새시장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있습니다.  전기차가 대규모로 보급되려면 충전지도 그만큼 양산돼야 하는데, 충전지 제조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희토류의 공급이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희토류가 앞으로 에너지 산업에서 석유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앞으로 에너지 안보는 석유가 아니라 희토류가 차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북한에 어마어마한 양의 희토류가 매장돼 있고, 그 개발을 위해 사모펀드와 합작회사를 세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희토류와 북한을 주제어로 과거에 보도된 뉴스를 찾아봤습니다. 지난 1월 구글의 에릭 슈밑회장이 갑자기 북한에 방문했는데, 그 이유가 북한 희토류때문일 것이라는 분석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글은 단순한 인터넷 기업이 아닙니다. 소행성에 우주선을 보내 희토류를 캘 계획을 세운 기업입니다.

북한과 합작회사를 세운 사모펀드와 구글을 연결지을 만한 근거는 없지만, 우연치고는 시점이 미묘합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내용은 북한이 특정 국가와 합작하지 않고 정주의 개발에 드는 자본을 사모펀드를 통해 조달하고 있는 점입니다. 자본을 직접 조달한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수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북한과 사모펀드. 아무리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정도로 북한은 자본주의와 아주 거리가  멉니다.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이 떠올랐습니다. 스위스는 작은 나라지만 영국 미국 등과 어깨를 겨룰 정도의 금융기업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금융강대국이라고나 할까요. 즉 김정은이 세계적인 금융자본가들과 개인적인 인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일의 네 자녀가 모두 금융강국인 스위스에서 유학한 점도 눈에 들어옵니다.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고, 시점과 방법이 문제인데, 개방에 필요한 돈을 끌어 줄 인맥을 쌓도록 한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김정은이 유학기간 중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데 시간을 더 많이 보낸 것이고. 인맥이란게 공부하며 쌓은 것보다는 함께 놀며 쌓은 게이 더 끈끈하잖아요.

정주의 희토류 개발회사인 퍼시픽센츄리 홈페이지 올라 있는 내용을 보면 정주의 희토류 개발로 2만명을 고용하게 되고, 이 영향을 30만명이 받는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 정주와 그 일대를 하이테크에 특화한 지역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그럼, 정주에 삼성SDI같은 회사를 만든다?)

추론에 불과하지만, 정주의 희토류, 미래의 에너지, 구글, 스위스, 금융자본 등과 연결되면서, 북한과 사모펀드의 합작회사 설립은 북한의 개방신호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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