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기능: 공동 통화

입력 2013-11-11 01:23 수정 2013-11-11 01:27
즐거움(pleasure)는 삶의 근간을 이루는 심리작용입니다. 경험의 유용성 혹은 효용을 평가할 때 근본적인 지표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유용성을 이익과 비용을 따져 추론한다고 여기지만, 이는 사후적인 합리화일 뿐입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유용성에 대해 결정해 놓고 의식적으로 이유를 갖다 대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지적으로 손익을 따질 경우,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아집니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은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설사 의사결정을 내리더라도 이미 상황이 종료됐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상황이 종료되기 전에 의사결정을 내렸더라도 잘못된 결정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따라서 인류는 의사결정을 신속하고도 (비교적) 정확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치를 발달시켰는데, 그게 즐거움이라는 심리작용입니다.

 

즐거움의 원리를 의사결정에 적용하면 아주 단순해 집니다: “쾌락신호가 있으면 접근하고, 고통의 신호가 있으면 피한다.” 즐거움의 원리가 있기에 우리는 두뇌의 자원을 최소한도로 소모하면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마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여러 경제주체들이 공동통화를 사용해 다양한 상품거래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상품이 무엇이건, 가격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합니다. 가격이 높다는 것은 가치가 크다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고가정책은 이런 심리를 역이용하는 상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험이 가치가 있을 듯하면, 즐거움의 정도가 높아지고, 적을 듯하면 즐거움의 정도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경험에 대한 효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고 해서, “공동통화로서의 즐거움(Pleasure as common currency)”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많으면 많을수록 즐거움의 정도가 증가하지만, 즐거움이 그 가치를 아주 정확하게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오차가 있습니다. 즐거움의 경험은 대상이 갖고 있는 특정 속성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몸은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 탄수화물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탄수화물이 필요하다고 논리적으로 판단해서 섭취하지 않습니다. 탄수화물이 “댕겨서” 섭취합니다. 단맛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맛 자체는 생존에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단맛의 즐거움은 단지 통화(currency)에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돈 자체가 삶을 가능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단맛을 추구하는 행위는 단맛이 본연의 지표기능(적절한 열량의 섭취)을 할 때만 이롭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두뇌는 그 적정수준을 잘 가늠하지 못합니다. 식량이 부족하던 시기에 우리 두뇌의 근간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이 당분의 과다 섭취에 대한 제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과다섭취를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외부의 시각(후세 혹은 외계인)에서 보면 대단히 이상해 보입니다. 즉 설탕이 듬뿍 들어간 청량음료를 마시는 행위를 우리 스스로는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외부의 시각에서 보면 대단히 기이한 행위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이는 재갈매기(herring seagull) 새끼의 행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재갈매기 새끼는 어미 갈매기가 주는 먹이를 어미의 부리에 있는 빨간 줄을 통해 지각합니다. 재갈매기 새끼에게 어미 부리의 모양을 단순화해서 노랑색 막대기에 빨간색 테잎을 붙여 보여주면, 어미가 먹이를 갖고 온 줄 알고 열심히 쪼아댑니다. 우리가 단맛을 통해 에너지를 지각해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재갈매기 새끼에게 빨간 테잎을 3개 붙여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더욱 적극적으로 좋아라 쪼아댑니다. 빨간 테잎 1개 붙인 막대와 3개 붙인 막대를 함께 주면, 1개 붙은 막대는 무시하고, 3개만 열심히 쫍니다. (유툽에 동영상이 있습니다.)

 

설탕이 듬뿍 들어있는 케익이나 파이에 열광하는 우리의 모습은 바로 재갈매기 새끼들이 빨간 테잎 3개 붙여 놓은 막대기를 쪼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미 대신 하얀 쌀밥을 먹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흰쌀밥 먹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재갈매기 새끼들이 알맹이 없는 빨간 테잎 3개 붙여 놓은 막대기를 쪼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흰쌀밥도 알맹이는 다 깎아 버려낸 것이니까요.

 

오늘의 결론: 흰쌀밥 대신 현미밥 먹자!!!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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