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TV드라마는 주요한 오락미디어입니다. 오락이란 말 그대로 기쁘고 즐거운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락미디어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조금도 기쁘고 즐거울 게 없습니다. 분노 공포 슬픔이 주된 내용이지 기쁨과 즐거움은 양념일 뿐입니다. 혹시 코미디를 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코미디 역시 가만 들여다 보세요. 말장난 아니면 다른 사람 깔아 뭉개기입니다. 깔아 뭉개는 사람은 기쁠지 몰라도 뭉갬 당하는 사람은 조금도 기쁠 게 없습니다. 오락미디어를 이용하면서 깔아 뭉개는 입장에서만 봐서 못 느꼈을 뿐입니다.

 

그럼 도대체 오락미디어는 뭐가 “오락”을 만드는 것일까요?

 

가장 전통적인 설명이 권선징악과 기분관리입니다. 권선징악은 말 그대로 선한 자가 잘되고, 악한 자가 못됐을 때 쾌락을 경험한다는 설명입니다. 기분관리는 흥분됐을 때는 기분을 안정시키는, 지루할 때는 흥분시키는 것을 통해 쾌락을 경험한다는 설명입니다. 오락미디어 심리의 근간이 되는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 당연한 걸 “이론”이라고 말하냐고 하시는 분이 있겠지만, 원래 당연한 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권선징악을 설명하는 이론이 성향이론(disposition theory)이고 흥분과 따분함을 설명하는 이론이 기분관리이론(mood management theory)입니다.

 

성향이론은 언뜻 보기에 너무나 당연해 진부해 보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도 잘 설명해 주는 이론입니다. 복수가 왜 그토록 달콤한지 설명해 주거든요.

 

운전할 때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겁니다. 난폭하게 끼어드는 운전자가 있으면, 그냥 확 들어 받고 싶은 충동 말입니다. 그런데, 그 충동을 마음 속의 충동으로 끝내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이 정말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천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저 바보, 그냥 넘기는게 돈인데,”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속이 다 후련하네”라고 할까요?” 99.9%는 후자입니다.

 

인간에겐 본성이 있는데, 부당함에 대한 응징은 가장 근본적인 본성입니다.

 

학술지 과학(Science) 2004년 305호에 “이타적 처벌의 신경적 근거(Neural basis of altruistic punishment) ”란 논문을 보면, 인간이 복수본능이 잘 나타납니다.


두뇌의 신경세포 작용을 보여주는 장비인 PET를 이용해 신뢰를 저버린 상대방에 대해 처벌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느낌을 갖는지 측정했습니다. A와 B가 신뢰게임을 하도록 하고, A가 B를 믿고 4만원을 주었는데, B가 A을 신뢰를 저버리고, 4만원을 그냥 떼어 먹습니다. 이때 A가 B를 처벌할 수 있는데, 처벌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1만원의 비용이 듭니다. A는 1만원을 비용을 지불하고 B를 처벌합니다. 이때 A의 두뇌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측정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1만원을 아까워했을까요, 아니면, 1만원을 손해 본 생각은 저버리고, 그저 “나쁜” B가 고통 받는 것을 즐겼을까요?

 

누구나 정답을 압니다. “나쁜 놈”에 대해 응징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쾌락을 경험합니다. 1만원 정도는 대수가 아닙니다. 즉, 1만원 손실의 고통을 감내하고라고, “나쁜 놈”의 처벌이 훨씬 달콤하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경제학 원리에 따른 이 연구는 말이 안됩니다. 4만원은 이미 잃어 버렸고, 여기에 추가로 1만원을 지불하는 선택하는 결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만원 잃고 참으면 손해는 4만원에 불과하지만, 4만원 잃고, 복수를 하면 손실은 5만원으로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4만원 손해보다는 5만원의 손해를 선택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비합리적인 존재입니다. 특히 복수와 관련해서는 인간에게 합리적인 이성은 없습니다. 심지어 목숨까지 겁니다. 이는 복수가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오락미디어의 주된 주제 중 하나가 권선징악과 복수인 까닭입니다. 인간은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에는 지루해 합니다. 뭔가 자극적인 게 필요한데, 복수와 권성징악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합리적인 인간보다는 비합리적인 인간이 적자로서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합리적인 인간은 배신과 불공평에 대해 그저 참고 넘기지만, 비합리적인 인간은 배신과 불공평에 대해 목숨을 걸고라고 응징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합리적인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는 배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비합리적인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는 배신이 발 붙일 자리가 없어집니다. 여기에 인간의 비합리적인 복수 본성이 생긴 이유가 있습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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