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창조경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창조경제에 대해 아무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추격형 경제를 선도형 경제로 바꾸는 것”이란 설명만 있을뿐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지적입니다. 창조경제에서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는 창조경제의 성격이 “무엇을 하자”라기 보다는 “어떻게 하자”에 있기 때문입니다. “추격형에서 선도형”이란 말에서 잘 드러나듯, 이제까지 우리는 남의 것을 보고 배워 적용하는데 주력했는데, 이제 우리가 직접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한국사회가 풀어야할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빠르게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신속하게 배워, 잘 적용하는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인데, 이제 그 전략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창조경제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 역시 “무슨 산업을 육성한다”가 아니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로 초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창조란게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봐야 합니다.

창조란 말 그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하지만 완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난장이가 멀리 볼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라는 유명한 말에서 나타나듯, 창조하기 위해서는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인용문에서 거인이란 과거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입니다.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 선다는 것은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습득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거인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선 난장이의 눈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지만, 그 지식의 틀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깨위에 올라선 이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창조경제 실행의 단서가 있습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을 습득, 바로 교육입니다. 그런데 이 교육은 스스로의 눈으로 볼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즉 창조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교육은 첫째 지식과 경험을 가능한 많이 쌓도록 하는 것이며, 둘째, 그 지식과 경험을 새로운 관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입니다.

그렇다면 창조경제에서 투자해야 할 분야가 명백해집니다.

한국사회의 교육열은 세계적이지만, 교육체계는 교육열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교육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대한 투자란 단지 교실 수를 늘리고, 학교 시설을 개선하는게 아닙니다.

우선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을 제대로 대접해 줘야 합니다. 유치원교사부터 대학교수까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그 어느 분야보다 뛰어난 사람이 종사하고,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어떻습니다. 법적으로 규정한 정규인원조차 제대로 충당하지 않고 임시직을 교육에 투입합니다. 심지어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가 담임을 맡아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개인수준의 교육열은 뜨겁지만, 사회수준의 교육열은 냉탕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둘째, 교육비 투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고등학교 완전 의무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10위권을 넘보는 나라에서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대학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같은 경제규모라면 서울대학교 같은 대학이 5개는 더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 교육 역시 아주 저렵한 비용으로 제공돼야 합니다. 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에 국가가 투자하듯, 대학교육 역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로 봐야 합니다.

셋째, 공학의 강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물론 공학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순수학문의 뒷받침없는 공학의 발달은 추격형경제에서는 적합하지 몰라도 창조형 경제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데, 응용학문만 강조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넷째, 문과 이과 구분을 없애야 합니다. “융합”을 중시하는 분위기는 바람직하지만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지만 동시에 피와 살로 구성된 생물체입니다. 자연과학의 이해뿐 아니라 인문사회적 이해도 필요합니다. KAIST가 인문사회과학을 포괄하는 종합대학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창조경제가 새로운 파라다임이라는 말은 옳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풀어야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새로운 파라다임인만큼 사고의 틀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 출발은 교육에 대한 투자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