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죽음과 자기결정권

죽음은 참 어려운 주제입니다. 조심스럽기도 하고요.

죽음과 관련해서 묘한 사회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사형과 안락사의 문제입니다. 둘다 인위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종식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대체로 합법이고, 다른 하나는 대체로 불법입니다.

더욱 묘한 대비는 죽는 사람의 뜻에 있습니다. 합법의 영역에 있는 전자(사형)의 경우, 죽어야 하는 사람은 죽기 싫어합니다. 반면, 불법의 영역에 있는 후자(안락사)의 경우에는 죽음을 원합니다.

사형과 안락사에 대한 찬반 역시 묘한 대비를 이룰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사형에 찬성하는 사람 중에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고, 반대로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 중에는 사형을 반대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겁니다.

안락사를 적극적으로 사회적 이슈로 끄집어 낸 이가 잭 커보키언(1928-2011)입니다.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병 환자들에 대한 적극적 안락사를 수행했습니다. 이 때문에 살인죄로 7년간 투옥됐다가 가석방됐습니다. 그의 삶은 영화 “You don’t know Jack”에서 잘 그려져 있습니다. (Jack은 커보키안의 이름이기에, “당신은 잭 커보키안을 몰라”라는 뜻으로 보이지만, 커보키안에 따르면, ‘You don’t know Jack’은 속어로 “당신은 X도 몰라”라고 합니다. 커보키안은 사람들이 안락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반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

그의 주장은 간결합니다. 인간에게는 자기결정권(self-determination)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결정 역시 인간의 자기결정권의 영역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언제 죽을지, 그리고 어떻게 죽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결정권은 커보키안이 제시한 개념은 아닙니다. 자기결정이론이라는 심리학 이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자율성, 관계형성, 역량 등 3가지 근원적인 욕구가 있다는 이론입니다. 다니엘 핑크에 의해 널리 알려진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의 근원이 바로 이 3가지 욕구입니다.

안락사에 관해 가장 적극적인 곳이 미국 오리건주입니다. 1994년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를 통과시켜, 의사가 불치병 환자에게 독극물을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의사의 처방에는  두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우울증 등과 같은 마음의 병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는 진단과, 둘째, 고통스럽지 않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받는 것입니다.

오리건의 존엄사를 다룬 다큐멘타리 “오리건에서는 어떻게 죽는가(How to die in Oregon)”이 HBO에 의해 방영됐고, 2011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다큐멘타리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 다큐멘타리 트레일러가 유투브에 올려져 있습니다 (여기 여기)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은 죽을 날을 그냥 기다리는게 아닙니다. 일반인들은 상상하지 못할 고통의 날을 보내는 것입니다. 커보키안의

어머니가 불치병으로 세상을 뜨기 전 그에게 “치통의 고통이 모든 뼈속에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치통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이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겁니다.)

“나의 남편은 어떤 정부나 종교지도자도 그가 얼마나 오랜 기간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My husband did not feel that any government or any religious leader

had the right to tell him how long he had to suffer)” – 오리건의 미망인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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