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멀티태스킹의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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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여러가지를 하는게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단지 이 글만 읽고 있지 않습니다. 귀로 들려오는 소리, 코로 들어오는 냄새,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 등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처리해 냅니다. 맛있는 바나나를 먹으면서도, 귀를 쫑긋 세워

조금이라고 이상한 소리를 잡아낼 줄 알아야 했던 아프리카 사바나의 인류 조상의 생존 비결이기도 합니다.
21세기

환경도 수백만년전 아프리카 사바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스테이크를 썰기 위해 칼질해야 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하는 말의 미묘한 뉘앙스를 놓치면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되겠지요. 자연스럽게 하는 운전

역시 멀티태스킹입니다. 눈으로는 전방을 주시하면서, 손으로는

핸들조작하고, 발로는 가속기와 감속기를 조작합니다. 늘 한번에

한가지씩만 해야 한다면, 우리 인류는 지구상에서 일찌감치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인류는 타고난 멀티태스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의 인지기능에 자동처리란게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의식의 조절없이 자동으로 신속하게 이뤄지는 인지작용을 말합니다. 사람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인상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데는 0.1초도 걸리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처럼 신속하게 이뤄진 인상 형성이 투표결정와 같은 정치행위에 의식적 판단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어느

후보에 표를 던질지는 후보의 사진을 보고 첫 0.1초에 형성된 인상이 결정적이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자동처리는 수백만년에 걸쳐 형성된 뇌의 기능입니다. 그만큼

성능도 뛰어나고 안정성도 높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인지작용에는

자동처리와 함께 통제처리란게 있습니다. 통제처리는 의식적 통제가 이뤄지는 인지작용입니다. 뭔가 의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작용은 모두 통제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게 대표적인 통제처리입니다. 대부분의 미디어의

사용은 통제처리에 해당합니다.

소프트웨어로 따지면 자동처리가 1.7이라면 통제처리는 2.1쯤 됩니다. 소프트웨어 버전이 틀을 바꾸지 않고 사소한 기능을

향상시킬 때 1.0에서  1.2와 같은 식으로 소숫점 이하의 자리를 올립니다. 같은 1버전이라도 1.0보다 1.7의 안정성이 훨씬 뛰어납니다.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는 업그레이를

하면 1.0에서 2.0과 같은 식으로 소숫점 이상의 자리를

올립니다. 2.0버전의 소프트웨어는 기능은 크게 향상되지만, 이전 1.7버전보다는 안정성에서 떨어집니다.

사람의 인지기능도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동처리는 수백만년에

걸쳐 안정성이 높습니다. 반면 새로운 인지기능인 통제처리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우수한 특질을

형성하는게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안정성은 떨어집니다. 자동모드와

관련된 작업은 동시에 여러가지 작업을 해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통제처리와 관련된 작업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에 두가지 이상의 작업을 하면 그만큼 질이 떨어집니다.

이 질의 저하가 심각한 문제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운전하면서 문자질하는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운전중 문자질은 만취운전만큼이나 위험합니다.

뇌는 한정된 자원입니다. 인간 뇌는 무한한 능력을 지녔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제한된 뇌의 용량 때문에 인류는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하게 노력해왔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인간에게 주어진

생물학적 뇌 용량의 한계를 극복하는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인간이 대규모의 사회를 이루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그 데이터베이스를 다시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것도 개개인의 제한된 뇌용량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뇌의 기능 중에서도 주의력처럼 통제처리와 관련된 작용은 쉽게 바닥이 드러납니다.

따라서 꼭 필요한 작업을 한번에 하나씩만 해야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TV 틀어놓고

제대로 공부할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통제처리와 관련된 작업을 하면서

멀티태스킹을 합니다.

그렇다면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멀티태스킹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 스탠포드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클리포드 나스 교수팀은 미디어를 과도하게 멀티태스킹할 경우 주의조절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나스 연구팀은 우선 실험 참자들을 주로 사용하는 미디어의 수와 사용시간을 조사해 과도한 멀티태스커와 그렇지

않은 집단을 구분한 다음 주의 조절과제를 하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과도한 멀티태스커들의 성과가 심하게

떨어졌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는 2009년 PNAS에 발표돼 많은 관심을 끌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연구의 자금을 댄 후원기관입니다. 폭스바겐과 닛산

등 자동차 제조업체가 연구자금을 댔습니다. 미디어 연구팀에 자동차 회사가 연구자금을 댄 것인데, 이는 자동차도 미디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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