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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역설

세상에 역설적인 상황은 많습니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데, 바로 그 노력때문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수 있습니다. 선행학습이나 과도한 사교육이 대표적입니다. 밤 늦게 까지 공부하는게 성적을 올리기 위함인데, 너무 늦게까지 학원의자에 앉아 있기 때문에, 학습 효율이 떨어지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늦은 저녁 이후에는 뇌가 지쳐, 학습 효율이 떨어지게 되고,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않으면 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벌려고 직원들을 다구치는데, 지나치게 몰아치는게 역설적으로 회사의 수익성을 갉아 먹는 역할을 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직원들의 집중력, 체력, 회사에 대한 충성심, 일에 대한 자부심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추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생깁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행복을 삶의 우선 순위에 두고, 행복을 추구하는데, 바로 그 성향 때문에 행복하게 살수 없게 됩니다. 이런 역설적인 현상을 행복역설이라고 합니다.

늘 그렇듯,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과학을 경험과학(empirical science)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경험에 근거해 논의를 진행시키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역설 현상 역시, 경험적 근거를 제시한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 덴버 대학교,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히브류대학교의 공동연구팀은 두 차례의 실험을 통해 행복에 우선순위를 두는 게 역설적으로 불행으로 이어질 수 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첫번째 연구에서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삶에서 행복에 어느정도 가치를 두고 있는지, 실제로 삶에 만족하고 있는지, 삶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지, 살아가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우울증세는 없는지 등을 측정했습니다. 결과는 삶의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달랐습니다. 스트레스가 적은 경우, 행복추구를 삶의 우선 순위를 두는 사람일수록 덜 행복했고, 삶의 의미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우울증세까지 보였습니다.

설문조사로는 인과관계를 수립할 수 없습니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을 더 추구하는 것인지, 행복을 추구하기에 행복하지 않은 것인지 알수 없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진은 실험연구도 실시했습니다.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은 행복에 의미를 두게 했고, 다른 한 집단은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행복한 장면을 그린 영화를 보도록 했습니다. 결과는 행복에 가치를 두도록 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행복한 장면을 보고도 그리 행복해 하거나 즐거워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실망감 때문입니다. 행복에 우선 순위를 높게 두다 보니, 행복함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 기대 수준은 주관적인 것이기에 어떤 좋은 경험으로도 충족시키기 어렵습니다. 행복을 쥐고 싶은데, 행복이 쥐어지질 않으니, 삶의 의미도 잃고, 우울증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행복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행복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이는 실천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다른 한 방법은 행복에 가치를 두되, 나의 행복 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에도 함께 가치를 두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나의 행복 혹은 나의 만족감에 대해 기대 수준을 낮출 수 있게 됩니다. 그만큼 행복감에 대한 실망감도 피할 수 있습니다. 덤으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천 중 하나입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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