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서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2007년 도입한 '징벌적 수업료제'가 학생들을 극도의 스트레스로 몰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서남표 총장은 학업부담이 너무 강하다는 학생들의 비판에 "MIT재학 시절 소방 호스를 입에 물리고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공부할 양이 많았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학업부담 그 자체가 자살의 원인이 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사람에게 역경은 역설적으로 더욱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니체의 "꺽이지만 않으면 강해진다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arker: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는 말처럼 고통은 삶의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남표 총장의 답변은 무책임해 보입니다. 한 학교의 지도자가 개인의 경험을 섣부르게 일반화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외국 유학생활은 생각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언어의 장벽뿐 아니라, 외국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차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학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이유는 유학생들만의 공동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방호스를 입에 물리고 물을 쏟어 붓는 수준의 역경이라도, 그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서로 위로해 줄수 있는 한, 그 고난은 견딜만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을 나누고 서로 위로해줘야할 동기가 살벌한 경쟁자라면 어떨까요? 징벌적 수업료제로 대표되는 스트레스의 문제는 대학 내 공동체를 파괴한다는데 있습니다.
카이스트에 재학중인 한 학생은 "카이스트 학생이 죽은 것은 징벌성 수업료나 과중한 학업 로드도 아닌 심한 경쟁의식과 배려와 협력이 없는 수업 체제 때문에 생긴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이 외로움을 본질적으로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그의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잘 짚었습니다.
자살의 원인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은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라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난 글 "사람의 머리가 큰 이유"에서 설명했듯,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고도의 지능을 갖추게 된 이유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사람됨의 근간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 욕구를 '소속의 욕구'라고 합니다. 
이 소속욕구를 충족할 기회가 박탈당할 때 사람은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거나, 자살할 생각을 품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한 설문조사에서 자살과 가장 관련이 깊은 심리 상태는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위기나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외로움과 소속 집단에 부담지운다는 자괴감입니다. 
경쟁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경쟁을 부추기기 위해 구성원들이 서로 의지할 공동체를 파괴하는 수준으로 간다면, 그 사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구성원들은 고독의 고통에 시달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계속 이어질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카이스트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OECD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한국사회 전반의 수준에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마음의 힘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노력이 필요하지만, 개인이 노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도 중요합니다. 서로 기댈 수 있는 가족과 친구가 바로 그 환경입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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