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는 것일까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지요?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나의 성품과 기질을 결정하고, 내가 자란 환경은 나의 성품과 기질이 특정한 식으로 발현되도록 합니다. 아무리 과거로 여러번 돌아가 봐야 똑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운명이 모든 것을 결정해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인류는 '운명의 힘'을 음악으로, 시로, 영화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도 그 중 하나입니다.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려다, 아버지를 죽게하고, 친오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레오노라의 슬픈 운명을 그렸습니다.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

<운명의 힘> 서곡의 주제가 나오는 영화 <마농의 샘> 역시 운명에 짓눌린 슬픈 인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세무사를 하던 쟝이 농사를 짓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죽음이라는 운명이었습니다. 그의 땅과 물을 탐낸 빠뻬와 위골랭의 계략과 음모 때문입니다. 빠뻬 역시 그의 탐욕때문에 비참한 운명을 맞이합니다. 그가 죽음에 내몬 쟝이 바로 그의 친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어드> 역시 운명의 힘에 끌려 살아가는 영웅담입니다. 영웅들은 무용과 지혜를 뽐내지만, 이들의 행동은 자유의지에 따른 의식적 선택보다는 신들에 의해 짊어진 운명에 끌려다닙니다. 헥토르가 아킬레스의 절친한 친구 파트로클루스를 죽이고, 헥토르는 다시 아킬레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 때문에 아킬레스는 파리스의 화살이 맞아 죽습니다. 신이 정한 운명대로 말입니다. 아래, 피터 폴 루벤스의 그림은 <일리어드>의 장면을 묘사한 <아킬레스 헥토르를 죽이다>입니다. 영화 <트로이>에서도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전투장면을 실감나게 그렸지만, 루벤스는 운명의 힘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운명의 힘은 인간이 지니고 있다고 믿는 ‘자유의지’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문학, 음악, 미술 뿐만이 아닙니다. 과학도 자유의지란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실험이 벤자민 리벳의 손가락 실험입니다. 리벳은 1980대초에 손가락을 움직이겠다고 마음을 먹기 이전에 이미 이미 뇌에서는 손가락을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뇌파를 측정해 보여주었습니다. 이 실험은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팀이 뇌영상장치를 이용해 재현했습니다. 손가락을 움직이겠다고 의식적으로 마음 먹은지 무려 10초 이전에 뇌는 손가락을 움직일 채비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행동이 의식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실험연구는 많습니다. 지금은 고전이 된 존 바쥐의 실험연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90대 초 바쥐와 그의 동료들은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다음, 다섯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도록 합니다. 두 집단의 차이는 단 하나의 단어였습니다. 한 쪽 집단의 과제에는 무례함과 관련된 단어(예: 성가시게 굴다)가 하나 들어 있었고, 다른 한 집단의 과제에는 공손함과 관련된 단어(예: 존중하다)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비록 단어 하나의 차이였지만, 두 집단의 행동은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성가시게 군다”라는 문장을 조합하도록 한 조건의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대화에 무례하게 끼어들었습니다. 반면 조합해야 하는 문장이 “그들은 그녀를 존중한다”인 조건의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대화가 끌날 때까지 공손하게 기다렸습니다. 실험에 참가했던 학생들이 의식적으로 판단해 대화에 끼어들거나, 기다린게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이 접한 단어 “성가시게 굴다” 혹은 “존중한다”의 차이였습니다.
 
사람에게는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의 작용이 있는게 분명해 보입니다. 의식적인 통제 바깥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한다고 해서 ‘자동처리’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 인류가 운명의 힘을 이야기해 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운명이란 것이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가 미리 결정해 놓은 것은 아닐 지라도,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힘이 있습니다. 누구의 피를 물려받았는지에 따라 기질과 성품이 결정되고, 어느 장소에, 어느 시기에 태어났냐에 따라, 그 기질과 성품의 발현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자유의지는 환상이란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그저 정해진 팔자대로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적 존재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비록 자유의지가 환상이라고는 하지만, 바로 그 환상이 실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가, 무얼러와 드웩의 실험입니다. 10세 어린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우선, 문제를 풀도록 한 뒤, 한쪽 어린이들에게는 “너 참 머리가 좋구나”라고 칭찬해 주었고, 다른 쪽 어린이에게는 “너 정말 열심히 했구나”라는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다음에는 10세 어린이의 능력으로는 풀기 힘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능력에 대해 칭찬받은 아이들은 쉽게 포기한 반면, 노력에 대해 칭찬을 받은 아이들의 문제를 풀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문제푸는 과정을 더 즐겁게 받아들였습니다. 똑같은 능력을 갖고 있어도, 내 운명을 나의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과 나의 운명은 내게 주어진 능력이 좌우한다고 여기는 태도는 커다란 차이를 초래합니다.

자유의지를 행사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비록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실은 이미 자동처리에 의해 결정된 것을 사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고 여기는 환상일 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일종의 근육과도 같습니다. 한 개인이 어떤 근육을 갖고 태어나는지는 운명의 힘이 결정하지만, 타고난 근육을 어떻게 계발할지는 마음의 힘이 결정합니다. 따라서, 자유의지를 행사한다는 것은 운동선수가 근력과 기술을 갈고 닦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수영하기 위해서는 “내가 수영하겠다”라고 마음먹는다고 수영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수영에 필요한 근육과 기술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다양한 근육이 있듯, 마음의 힘을 구성하는 마음의 근육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마음의 근육을 꾸준하게 단련할 때 운명의 힘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길러집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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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t, B., Gleason, C. A., Wright, E. W., & Pearl, D. K. (1983). Time of conscious intention to act in relation to onset of cerebral activity (readiness-potential): The unconscious initiation of a freely voluntary act. Brain, 106, 623-642.

Mueller, C.M., & Dweck, C.S. (1998). Intelligence praise can undermine motivation and performan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5, 33–52.

Soon, C. S., Brass, M., Heinze, H-J. & Haynes, J-D. (2008). Unconscious determinants of free decisions in the human brain. Nature Neuroscience, 11, 543-545.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University of Alabama에서 박사 학위(커뮤니케이션 전공)를 받았습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슬픔과 즐거움의 심리입니다. 주 연구 분야는 미디어 사용이 인지역량, 정신건강 및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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