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인생의 축구장, 휘슬이 울릴 때까지 뛰고 또 뛴다

알베르 카뮈(1913~1960)는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부조리의 전형을 제시했습니다. 또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에서는 ‘이토록 부조리한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불안, 그럼에도 삶은 지속되어야 하는 이중적인 상황’을 통찰한 바 있습니다. 세상이 온통 거짓과 부패에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의 대처 양상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숨은 신’을 쓴 프랑스 철학자 뤼시앙 골드만(Lucien Goldmann)에 의하면 야만의 시대를 사는 인간의 처세는 현실에 굴복해 모른 척하며 사는 방식 외에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초월적인 진실 속으로의 은퇴입니다. 세상을 등지고 은둔하는 길을 선택하는 게지요. 이는 고도의 종교적 결단이나 세상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다른 하나는 진실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과 맞서는 투쟁입니다. 이 길은 현실과 진실의 갭이 너무 크다는 한계에 직면하면 세상의 논리와 타협할 여지가 있습니다. 이때 취할 수 있는 제3의 처신이 바로 ‘비극적 태도’입니다. 진실의 눈으로는 세상을 거부하지만 현실의 눈으로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승인하는 ‘모순된 선택’이지요. 세상은 타락했지만 현실을 벗어난 초월적 세계를 꿈꿀 수 없는 상황, 다시 말해 현실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진실을 추구할 수 없다는 인식이 그러한 결정을 낳습니다.

이는 세상 일에 전념하면서도 세상을 부정해야만 하는 고통스런 선택입니다. 반드시 세상을 통해야 하고, 부재로써만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의 진실. 대단히 아이러니하지요?  이러한 부정의 변증법은 카뮈가 말한 ‘이중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말을 깨우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는 귀머거리였던 카뮈.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성장해 고학으로 알제리 대학를 다녔습니다. 이후 레지스탕스 활동, 공산당 가입과 결별, 인권운동 등을 통해 당시의 부조리와 맞섰는데요. 햇빛 때문에(‘아랍인의 칼 때문’이라는 최근 번역도 있음) 권총 방아쇠를 당긴 ‘이방인’의 뫼르소, 파멸 직전까지 기필코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페스트’의 오랑 시민을 창조한 그 역시 비극적 세계관을 가졌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한 모든 것은 축구로부터 배웠다”는 카뮈의 발언입니다. 도덕률과 축구. 카뮈는 서로 생소한 두 관계를 연결, ‘인생의 축구장’으로 확장시키면서 이를 ‘비극적 인간의 길’로 은유하는 성찰에 도달했습니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처럼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뛰고 뛰고 또 뛰어야만 한다는….

지난 13일 새벽 브라질 월드컵 축구 개막식이 상파울루의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열렸습니다. 평소 보기 힘들었던 세계적 스타들의 활약상을 화면으로 즐길 수있는 절호의 기회인데요. 홍명보 호의 선전을 기대해봅니다.

 

 

 

 

 

 

 

 

▲ 한국 시각으로 13일 새벽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개막전인 브라질-크로아티아 경기. <사진: KBS2>

 

마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주부생활ㆍ일요신문을 거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으로 일했고요.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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