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10일째, 억장 무너지고 곡소리 다시 들린다

입력 2014-04-25 00:28 수정 2015-01-15 16:32
인간이 잘못된 삶의 방식을 취했을 때 비극은 시작됩니다. 동양에서는 군자와 소인배를 가르는 기준을 '중용(中庸)'에 두었으며 거기서 벗어난 행동을 하면 탈이 난다고 했습니다. 중용적 태도는 흔히 '이것과 저것의 중간', '양 극단을 배제한 중앙'이나 '산술적 평균'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서로 다른 것들이 각각의 본성을 잃지 않고 하나된 모습으로 균형을 이루는' 상태를 뜻합니다. 여러 사정이 고려된 복합적 균형을 일컫는 게지요. 이러한 중용은 '탁월성'이라는 덕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빔밥은 다양한 식재료들이 각자의 고유한 맛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섞여 새로운 맛을 내는 탁월한 중용 음식입니다. 그럼 카 레이서에게 중용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과감함'입니다. 유치원 통학 버스 운전자의 중용은? 어린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니 '조심 운전'이 되겠지요. '허풍'과 '자기 비하'의 중용은 '진실성'이며 '무모함'과 '비겁함'의 중용은 '용기'입니다.

지난 16일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과 주요 승무원들은 무모하거나 비겁한 성향의 소유자들로, 용기라는 중용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time'보다 'timing'을 중시하는 동양적 '時' 관점에서 볼 때 위기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행동을 고의로 회피한 이들은 모리배에 가깝습니다. 구조 작업과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정부가 골든 타임을 놓친 후 우왕좌왕하는 지휘 체계로 혼선을 빚으며 시간을 낭비한 것도 중용의 실효성과는 거리가 멉니다. 일부 정치꾼들은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리와 허튼 행동'으로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0일째. 사고 해역 물살이 약해진 소조기가 어제로 끝났습니다. 주말엔 비까지 내린다네요. 침몰 이후 구조자 전무…. 불쌍한 우리 아이들 어쩌나요. 억장 무너지고 곡소리 다시 들립니다.

 

곡비(哭婢)/ 윤영

지난 겨울부턴가 밤낮으로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대체 뉘 집 닭이 저리 우는가. 불면증이 있는 나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겨우 잠들 만하면 들려오는 소리는 공포다. 무슨 일이 있어도 녀석을 찾아보리라. 두어 번 찾아가 실패했지만 오늘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목단 흐드러진 절집을 지나 골목에 들어섰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소리가 군집해 있다니. 절집을 배경으로 발정 난 개떼들이 몰려다니는 도심 변두리 갓 들어선 파라솔 공장의 절단기 소리까지 가세하니 닭 울음은 오리무중이다. 어두워지기 전에 찾아야 할 텐데 조바심이 목까지 차오른다. 간간이 들려오는 듯하나 이내 그친다. 필시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서럽게 울지 않았던가. 애초부터 환청이었을까.

족히 두 시간은 헤맸나 보다. 돌나물 꽃이 마당에 노랗게 번진 산 아래 집에 앉았다. 어디쯤에서 소리를 잃어버렸을까. 꺾어진 골목이거나 막힌 바람이 한꺼번에 회오리처럼 내 귀를 훑고 지났을 무렵일 게다. 어둑신하다. 오후 나절이 순식간에 흘러가고 참 멀리까지 왔단 생각이 들었다.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 좁은 계단을 내려오는 여인의 발걸음에 울컥 밀려오는 이 낯선감이라니. 골목은 어둠을 그러모으느라 여념이 없건만 나는 여태 이렇다할 무엇도 찾지 못했다. 꿈을 꾸었대도 할 수 없다. 발치에 걸린 잡풀을 툭툭 차내며 골목을 벗어나니 무논에 얼기설기 불빛이 환하다.

저녁 식탁은 캄캄하고 맛이 없었다. 또 울부짖는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헌데 난 왜 상관없는 닭 울음을 찾으러 다녔을까. 제 몸속의 고장 난 자명종을 달고 다녀 한심함을 일깨워주기 위해서였나. 것도 아니라면 내가 누릴 수 있는 한낮의 고요나 깊은 밤의 정적에 찬물을 끼얹는 방해꾼이라는 이유에서였나. 아무튼 녀석은 우느라 지쳐가고 난 놈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지쳐갔다.

놈 때문에 한밤중에 깨어나 멀거니 앉는 일이 잦아졌다. 낮에 발품을 많이 판 탓인지 오늘밤 어렵사리 잠이 들었다. 어느새 쇠잔함을 넘어선 등걸 하나 삼킨 듯 울음 들린다. 소리란 소리는 밤이면 원래 사그러지지 않던가. 하지만 녀석은 주야장천 울어댄다. 들을수록 애환이 스며있다. 사람의 슬픔을 대신 울어주는 듯 간헐적으로나마 심연까지 와 닿는데 오소소 떨린다. 혹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슬픔의 무게를 덜어주는 닭이 아닐까.

고대부터 전해져 왔던 우리의 전통 직업에 '곡비'라는 것이 있다. 남의 슬픔을 대신 짊어지고 울어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고 보니 '꺼억꺼억', '에고에고'로 들리는 듯도 하다. 하기야 세상에 울 일이 얼마나 많던가. 한 시절을 넘겨주고 한 시절을 만들어가는 데 웃을 일만 있던가. 하잘것없는 슬픔이야 텃밭 푸성귀처럼 흔하다만 함량과 농도가 깊어서인지 처절하다. 오늘밤은 어느 마실 누구의 비애가 저토록 처연할까.

어린 남매가 솔기 터진 옷을 입고 먹을 거라곤 며칠째 밥상을 지키는 쉰밥 덩이뿐인 애통함을 대신 울어 주는 겐가. 평생을 일궈 온 직장에서 퇴직금 한푼 받지 못한 채 쫓겨난 가장의 분노까지 묻어난다. 친구라고는 키우는 애완 거북이가 전부인 자식이 왕따를 이기지 못하고 싸늘한 죽음으로 영안실에서 맞아야 하는 애끓는 부모의 심정을 누가 알랴. 칠십을 문맹으로 살다 뒤늦게 성인학교에서 한글 익혀 객지에 있는 자식한테 편지 써서 부치러 가는 길에 사고로 이승을 마감해야 하는 삶도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아이가 버려지고 수백 쌍의 부부가 폭력에 시달린다. 사는 게 버겁다는 이유로 자살집단에 들어가고 곳곳에 날을 갈아 복수를 꿈꾼다. 감옥의 독방과 언덕배기 쪽방은 포화 상태란다.
저릿저릿하다. 소소한 나의 일상을 부산함과 소음으로 몰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증오했던가. 어느 순간 울음에 한이 서려있음을 알았을 때 의미가 달라지고 있었다. 물론 내가 가진 착각이면 어떠랴. 혼자서 삭혀도 가라앉지 않는 그네들의 슬픔, 슬프다고 말하지 않으면 차마 병이 되는 슬픔에 울어주는 누군가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리라. 그래 믿는다. 이 세상에 없겠지만 어딘가에 웃을 일과 울 일 그 사이를 조율하는 곡비가 살아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것이 과대망상이어도 괜찮다.

더 많이 울거라. 세상과 소통되지 못하는 서름한 비렁뱅이과 허풍쟁이도, 사기꾼도, 억울한 이의 죗값도 네가 좁쌀 쪼아먹듯 먹어치우고 가려무나. 젖은 물가에서 허우적거릴 때 깊디깊은 강을 건너 마른 땅으로 건네 주거라. 혹여 슬픔이 그를 묶거든 너는 밤새 울음 풀어헤쳐 한겹 벗겨 주거라. 그리하여 그가 누구든 어디에 있든 이제 좀 가지런해졌으면 좋겠구나. 바닥에서 치고 오른 상흔과 슬픔을 평생의 회전축으로 살지는 않을 거라고 말해주렴.

이 서러운 세상에 한참을 머물다 갈 닭 한 마리 슬픔의 독을 빼느라 오래오래 울대 적신다. 다시 곡비 소리 묵직하게 들려오고 너로 인해 궁금함의 풀섶길을 헤매고 다닌 불면의 나는 백묵가루처럼 가볍게 몸을 눕힌다.

윤영 수필가
경북 영덕 출생. '한국수필'로 등단. 동서문학상 수상. 수필집 '사소한 슬픔'.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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