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기 전의 사랑, 자정 직전 모습은?

입력 2014-01-26 22:07 수정 2014-02-01 11:54




유럽 여행 중인 큰딸이 아이슬랜드에서 찍은 오로라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한여름의 백야와 함께 유명한 아이슬랜드 겨울 오로라는 최근 태양 흑점 대폭발로 인해 발생률이 높아졌다지요. 남색에 가까운 초록 물감의 수채화? 굵은 붓 터치 같은 신비한 모습에 '멋있네'라는 상투적 감상과 '얼마나 추위에 떨었을꼬' 하는 노파심이 교차했는데요. 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멋진 풍광에 혹한을 잊었겠지만요. 부모 눈에는 비경보다 북극 바로 아래 한 점으로 서 있을 녀석이 더 아른거리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큰 걱정은 안 합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석 달간의 유럽 여비를 마련하고 동행 없이 홀로 길을 나설 정도로 강단있는 아이니까요. 전체 일정을 보니 그야말로 강행군이어서 많이 놀랐습니다. 지난 해 11월 28일 시작된 여정은 프랑스-영국-아이슬랜드를 거쳐 다시 프랑스-스위스-독일-이탈리아-체코로 이어집니다. 지금은 스위스 어딘가에 체류하고 있겠네요. 우리 젊은 시절엔 꿈도 꾸지 못했던 유럽 여행.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훌쩍 떠나는 요즘 젊은이들이 부럽습니다.                

유럽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킨 영화로 '비포' 시리즈가 있지요. 1995년의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와 2004년의 '비포 선셋(Before Sunset)', 그리고 2013년작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인데요. 9년 간격의 이들 영화는 유럽의 고색창연한 풍경들이 스토리와 함께 호흡하며 미장센을 완성해 눈길을 끕니다. 레코드 가게, 박물관, 묘지, 놀이 공원, 다뉴브 강, 기차 역이 있는 비엔나(선라이즈)와 세익스피어 책방, 악사가 있는 거리, 노틀담 성당의 파리(선셋)가 정취를 불러 일으키고요. 색색의 빌라, 은녹색의 올리브 나무들이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그리스 해변 마을 카르다밀리(미드나잇)도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 Haris Alexiou - Gia ena Tango

95년 파리행 기차 안에서 처음 만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한 밤을 꼴딱 새워 사랑을 나눕니다. 이들은 아쉬움 속에서 6개월 후를 기약하며 헤어지지만 재회를 못합니다. 그리고 9년 후 우연히 해후하지요. 과거 풋풋한 청년이었던 이들은 30대가 돼 각각 작가와 환경 운동가로 변신했는데요. 운명은 이 극적인 만남마저 시기합니다. 이미 유부남이 된 제시가 떠나야만 하는 상황…. 다시 9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해가 뜨기 전' 사랑하고 헤어졌으며 '해가 지기 전' 재회해서 다시 헤어져야 하는 두 전작 이야기가 '자정 직전'까지 왔습니다. 이제 18년간의 사랑을 어떻게든 '정산할 때'가 된 것이지요. 

2013년 그리스 해변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뜻밖에도 40대 부부가 됐습니다. 쌍둥이 딸을 둔 결혼 7년차라나요. 제시의 붉은 수염은 하얗게 새고 더부룩합니다. 셀린느 역시 몸이 불어 아랫배가 꽤 튀어나왔습니다. 예전의 통통 튀던 젊은 감수성은 많이 퇴화했으나 쉴 새 없이 떠드는 수다스런 애정만은 여전합니다. "지금 다시 만나도 과거처럼 대시하겠느냐"는 셀린느의 질문에 제시는 "당근"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잘잘한 현실적인 문제로 서로 지지고 볶습니다. 그토록 싱싱하던 사랑이 많이 상했는데요. 자정 직전, 그들은 다시 '환상적인 밤의 시작'을 꿈꿉니다.
 
세 편 모두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에 에단 호크, 줄리 델피가 주연했습니다. 흐름이 이어지는 이야기와 관객의 나이가 함께 들어가는 희귀한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지요. 벽에서 18년 전 냄새가 나는 오래된 극장에 앉아 남의 얘기로만 바라보다가 불현듯 헤어진 옛 애인이 떠오르는 것 같은….






▲ 시와 - 기차를 타고






▲ Katie Melua - Nine Million Bicycles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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