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9개의 구멍을 가진 상처 "사는 게 다 똑같지예"

‘베다’, ‘우파니샤드’와 함께 힌두교 3대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에 의하면 인간은 그저 아홉 개의 구멍을 가진 상처 자체입니다. 그러니 태생적으로 아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삶의 미스터리와 사랑의 히스테리에 끊임없이 상처받고 ‘이해와 용서’라는 딱지가 들어앉아 떨어질 만하면 다시 상처가 덧나는 순환 시스템. 그것이 인생이지요. 여기서 필연적으로 구원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창동 감독의 2007년 작품 ‘밀양’은 ‘인간의 상처와 용서’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입니다. 죽은 남편의 고향 밀양에 새 둥지를 튼 젊은 과부 신애(전도연)는 유괴범에 의해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을 잃습니다. 고통을 이겨내고자 붙든 ‘신의 뜻’에 의해 범인을 용서하려 하지만 뜻밖에 “하나님에 의해 용서 받았다”는 말을 듣고는 쓰러집니다. “내가 용서하기 전에 누구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어”라고 절규하지요.

신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 찾아왔어요.”
범인 “나도 믿음을 갖게 됐어요. 하나님이 이 죄 많은 인간을 용서해 주셨어요.”
신애 “그래요?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다구요?”
범인 “그래요. 회개하고 용서 받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어머니로서 취할 수 있는 용서라는 ‘특권’을 신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 그녀는 특이한 방식으로 운명에 대응합니다. 일종의 ‘자학’을 통해 신의 세계에 흠집을 내려 하지요. 자신을 교회로 이끈 약사 남편을 유혹하고 ‘하나님’을 외치는 부흥회에 몰래 잠입해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틀어놓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밀양’에 대해 “종교를 말하는 영화가 아니라 인간을 말하는 영화”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치유받지 못하는 인간의 상처, 가해자를 향한 피해자의 용서에 관한 화두를 던진 게지요. 물론, 결론도 없으며 정답도 없습니다. 신애 역시 그 상태에서 그렇게 살아갈 뿐입니다. 영화 말미에 그녀의 남동생이 종찬(송강호)에게 “밀양은 어떤 곳이냐”고 묻습니다. 종찬은 말합니다. “똑같아예. 딴 데하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예.”

지난 늦가을 어느 날 ‘밀양(密陽)’의 햇살 속으로 성큼 들어가봤습니다.


▲ 황토로 지은 오리 전문 식당 ‘황토’.
근사한 인테리어와 착한 요리가 일품.


▲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불리는 영남루와
인근 풍경. 도도히 흐르는 밀양강(남천강)을 내려다 보고 있는 영남루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목조 건축물로 퇴계 이황, 목은 이색,
문익점 등 당대 명필가들의 시문 현판들이 있음.

영남루는 낙동강 동쪽 하늘에 있어
왕명 받기 전부터 명승지라 들었네

발 걷으면 달 오르고 바람이 들며
난간에 기대면 솔개 날고 물고기 뛴다

한 시내는 일천 뙈기들에 굽이치고
두 골짜기는 일만 그루의 숲을 나누었구나

한스럽다 강하의 침석을 깔지 못하니
어찌 홀로 서늘한 곳에 자리 펼치리

– 하연(河演, 1376~1453) ‘영남루’


▲ 할머니 무릎을 베고 어머니가 들었고, 어머니 무릎을 베고 아이들이 들었던
민족의 노래 ‘밀양아리랑’ 비. 정선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이 탄식의 노래라면
밀양아리랑은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신명의 노래.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 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소

– 밀양아리랑


▲ 가야금 삼중주단 ‘가야미’ – 밀양아리랑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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