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 수사들은 서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인사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최후와 소통한 현자들의 대화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게 죽음은 언제나 두렵기 마련이어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살려고 몸부림칩니다. 어떤 이들은 마지막 단계에서 주사기를 빼 던지거나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는 '섬망' 증세를 보이는데요. 인간의 유전정보(DNA)에는 죽음에 저항하도록 만드는 그 무엇이 저장돼 있다고 합니다.
암이 무서운 건 통증 때문입니다. 우리 몸의 통증을 1~10단계로 나누면 치통은 4, 산통(産痛)은 7에 해당하며 암의 고통은 산통 이상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이전까지 점잖던 사람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인격의 황폐화 증상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다만 모르핀 등으로 통증만 조절되면 대부분 평소 살아왔던 모습으로 임종을 맞이한다네요. 일반적으로 많이 배우고 부유한 사람보다 물질적, 신체적 삶이 고달팠던 이들이 훨씬 더 편안하게 죽음을 수용한다지요. 누구나 한 번은 가야할 '죽음'의 세계. 도대체 어떤 곳일까요.


엊그제 소설가 최인호가 68세로 타계했습니다. 고인은 2008년 발병한 침샘암으로 투병하다가 병세가 악화돼 서울성모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이던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돼 문단에 데뷔했고요. 군 복무 중이던 1967년에는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등단 직후 그가 발표한 '타인의 방', '처세술 개론', '술꾼' 등의 단편들은 참신한 문체와 날카로운 세계 인식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문단에서는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상찬을 받던 김승옥을 계승하는 작가가 나왔다고 난리였지요. 70년대에는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바보들의 행진', '겨울 나그네' 등 감각적인 청춘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많은 작품이 영화화돼 일약 청년 문화의 기수로 떠올랐지요. 이후 '잃어버린 왕국', '길 없는 길', '상도' 같은 베스트셀러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습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올해 2월에는 그의 문학 인생을 정리한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을 출간했습니다. 최인호의 작고 소식을 접한 많은 팬들의 애도 행렬이 줄을 잇고 있네요.
 
"내 20대의 젊은 날을 온통 사로잡았던 작가 최인호. 선생님으로 해서 많이 행복했고 세상도 많이 넓어졌었죠. 뒤늦게 감사드립니다. 작가로서 참 빼어나고 근사하셨어요. 이제 더 많이 편안하시겠네요. 안녕히 가세요."
 
"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을 바라본다. 소중한 예술가 최인호 작가님이 떠나신 밤. 사람과 사랑과 청춘과 그 번민을 곱고 솔직하게 나직히 일러주시던 그 예민한 영혼이 여행을 떠나셨다. 지금 그는 날아다니고 계시겠지. 우리가 느끼는 모든 상심을 내려보시겠지."
 
"초등학교 때 '별들의 고향'을 읽으며 소설에 눈떴고 여고시절 '불꽃'을 읽으며 주인공 영후를 흠모했으며 '고래사냥', '겨울 나그네' 영화를 보며 그의 감성에 가슴저리던 시절. 이젠 진정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군요. 안타깝습니다…"
 
"방황하는 청년들의 꿈을 이야기했던, 그래서 저의 청년시절을 위로해주셨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내 몸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내 다정한 아픈 사람들아, 그대의 병을 대신 앓고 싶구나. 아프지 말거라, 이 땅의 아이들아, 그리고 엄마야 누나야, 창밖을 보아라. 새봄이 일어서고 있다'(최인호). 올 봄, 선생님의 그런 기도에 얼마나 힘났게요."

발병 다음해인 2009년 잡지 '샘터'에 실은 '가족' 마지막회에서 "갈 수만 있다면 가난이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는 불쌍한 가난뱅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싶·다"는 희망을 피력했던 최인호. 그럼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을 떠나지 않자 다니던 성당을 찾아 "하느님께 항복합니다. 하느님께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소설가 박범신은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여전히 잠 안 오고 여전히 세상 고요하고 여전히 사랑은 아득하다. 가뭇없이 이어지는 불꽃은 갈망뿐이다. 희망이라고 말하지 못할지라도 그 불꽃이 존재의 시원인 건 틀림없다. 떠나고 남는 게 뭐 대수겠는가. 내겐 아직도 타고 있을 그이의 불꽃이 보인다."
"그이는 작가로 태어났고, 그렇게 살았고, 살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일찍이 고흐가 말한 바, 걸어서 별까지 가는 일이 삶일진대"

28일이 발인. '겨울 나그네' 최인호가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명복을 빕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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