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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희를 톱스타로 만든 '겨울 여자'

2008년 최종 부도를 맞고 폐쇄된 종로 3가의 극장 ‘단성사’. 흔히 이곳을 한국 영화의 요람, 혹은 역사라고 말합니다. 1907년 동대문의 거상들에 의해 개관한 단성사는 라이벌이었던 우미관이 6.25 전쟁으로 인해 잿더미가 되자 종로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후 경쟁 관계에 있던 퇴계로 대한극장은 ’70밀리 시네마스코프’를 내세워 스케일 큰 영화를 주로 상영했으며 광화문 네 거리에 있던 국제극장은 인근 덕수궁 담길을 걷는 연인들을 겨냥한 로맨틱 무비를 많이 틀었지요. 반면 단성사는 서부 영화와 액션물에 주력했습니다. 이는 당시 극장 주위가 소위 ‘주먹’들의 근거지였으며 ‘종삼’으로 불렸던 유곽이 지척에 있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단성사는 77년, 기존 이미지를 바꿈은 물론 엄청난 ‘대박’이 되는 문제작 ‘겨울 여자’ 간판을 올립니다. 작가 조해일의 신문 연재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영자의 전성시대'(1975)로 흥행 감독이 된 김호선의 네 번째 작품인데요. 무려 100일 동안 전회 매진을 기록했습니다. 77년 추석 특선 프로로 상영을 시작해 해를 넘겨 구정 특선 프로로 이어졌으며 3월이 되어서야 막을 내렸지요. 총 관객 수는 ‘별들의 고향’ 46만 명 기록을 넘어서는 58만 명. 당시 600만 명이었던 서울 사람 10명 중 한 명이 단성사를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로 3가 극장에서 비원 앞까지 장장 2,000m나 줄을 이었던 장사진. 참 대단했지요. 이 기록은 역시 단성사에서 상영돼 67만 명을 모은 임권택 감독의 90년 작품 ‘장군의 아들’이 있기까지 13년 동안 깨지지 않았습니다.

‘겨울 여자’는 당대 최고의 배우인 신성일과 신인이었던 장미희가 열연한 영화입니다. 순수하면서도 성적으로 개방된 여자 주인공이 여러 남자들을 거치면서 기성 윤리관과 육체적 속박에서 해방된다는 파격적 내용인데요. 주인공 ‘이화’라는 캐릭터는 ‘청순한 여인의 얼굴을 가진 탕녀’면서 ‘애인과 어머니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면적 여성’입니다. 장미희는 75년 TBC(동양방송) 특채 탤런트로 뽑힌 이듬해 박태원 감독의 영화 ‘성춘향전’ 공채에서 276 대 1의 경쟁을 뚫고 춘향 역에 발탁돼 스크린 데뷔했으나 빛을 못 보고 있다가 ‘겨울 여자’로 일약 톱스타가 됩니다.

“여고 졸업을 앞둔 이화는 자신을 짝사랑하던 부잣집 아들 요섭(신광일)이 자살하는 사건을 겪는다. 이 충격적인 경험 이후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대학에 입학한 이화는 운동권 학생 석기(김추련)를 만나 아낌없이 사랑하지만 그도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이후 이화는 가정 파탄으로 절망에 빠져 있는 고등학교 은사 허민(신성일)을 만난다. 그녀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허민의 남성성과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아 주고 그를 아내와 재결합시킨다. 그런 후 특수학교 선생님으로 봉사하고자 떠난다.”
  
영화 속에는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삽입돼 많은 사랑을 받았고요. 가수 김세화가 부른 ‘겨울 이야기’, ‘눈물로 쓴 편지’ 같은 노래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봄에도 우린 겨울을 말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봄 속에도 남아 있다고/ 여름에도 우린 말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한여름에도 눈을 내리죠/ 가을에도 우린 겨울 얘기를 했죠 우리들의 겨울은 가을에 벌써 다가왔다고/ 겨울엔 우린 겨울을 모르죠 우리들의 겨울은 너무나 추운 생각뿐이죠/ (중략) / 겨울엔 그러나 사랑이 있죠 우리들의 겨울을 녹여줄 수 있는 사랑이 있죠.”(김세화·이영식 ‘겨울 이야기’, 1977, 조해일 작사, 정성조 작곡)

▲ 김세화 & 이영식 – 겨울이야기

▲ 김세화 – 눈물로 쓴 편지

▲ 베르디 –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Opera ‘Nabucco’ – Va Pensiero
The Metropolitan Opera Chorus and Orchestra

마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주부생활ㆍ일요신문을 거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으로 일했고요.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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