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김추자 '님은 먼 곳에'

“70년대 대중 가요는 기성 세대를 누르고 젊은 세대가 처음으로 주류로 등장했던 시기의 음악이다. 뜨겁고 순수했던 태생적 열정은 7080 음악의 뜨거운 부활로 이어졌고 복고 문화의 중심에서 오랜 기간 대중에게서 사라졌던 뮤지션들을 컴백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사실 70~80년대 대중 음악에 대한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목마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3명의 여가수 때문이다. 김추자를 필두로 박인희, 이연실이 그들이다. 그중 팬들의 최대 관심은 최고의 섹시 댄스가수 김추자다.”(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김추자(1951~ ). 참 대단했지요. 그만큼 노래와 춤에 능하면서 대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었던 가수가 몇이나 될까요. 아마 단번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을 듯 싶습니다. 69년 ‘늦기 전에’로 데뷔해 섹시한 춤과 화려한 의상, 허스키한 보이스로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걸. 치마와 머리카락 길이가 통제의 대상이었던 시절 우울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며 ‘문화 다이너마이트’ 역할을 떠맡았지요. 꽉 죄인 옷의 터질 듯한 곡선은 ‘돌부처도 돌아앉게 만든다’고 할 만큼 뇌쇄적이고 파격적이었습니다.
 
이후 2년 사이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빗속을 거닐며’, ‘나뭇잎이 떨어져서’, ‘거짓말이야’, ‘꽃잎’, ‘꿈속의 나오미’  등을 히트시키며 최고의 가수로 성장했습니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 불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는데요. 끓어오르듯 한을 내뱉다 어느덧 엉덩이와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독특한 창법은 개성 만점이었지요. 특히 자연스런 율동은 거의 신기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사부인 신중현은 ‘김추자는 움직이지 않으면 목소리가 안 나온다. 그의 노래는 몸에서 나온다. 김추자의 춤은 소리를 내기 위한 율동’이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광기에 가까운 춤사위와 파격적인 의상은 수십 년이 지난 요즘 봐도 전위적입니다.

김추자는 폭발적 인기만큼 사건 사고도 많았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 기관이 불러도 가지 않아 간첩이란 누명을 썼으며 75년의 대마초 파동에도 얽혔습니다. 청혼을 거절당한 매니저가 소주병으로 그의 얼굴을 공격한 사건까지 일어났는데요. 당시 연예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던 이 테러로 김추자는 100바늘 이상의 봉합 수술과 6번에 걸친 성형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얼굴로 다시 무대에 올라 뭉클한 감동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71년 12월 9일. 소주병에 난자당한 김추자가 붕대를 친친 감고 시민회관 자신의 리사이틀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정상적으로 노래를 부를 수 없었지요. 그때 고등학교 졸업반으로 신중현 사단의 일원이었던 김정미가 핀치 히터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당시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김추자 양은 상처뿐인 몸을 무대 위 의자에 의지한 채 자신의 쇼를 말없이 응시했고 그 앞에서는 김정미 양이 김추자의 노래를 그대로 불렀다”, “어쨌든 김추자 최악의 무대에서 김정미 최고의 무대가 탄생한 셈이다.”(주간 경향, 1971, 12, 22)

김추자는 81년 결혼한 후 연예계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이후 지난 2007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난 은퇴하지 않았다. 공백기가 길어졌을 뿐”이라 밝혀 복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립습니다!

▲ 청개구리 사랑

▲ 거짓말이야

▲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 님은 먼 곳에

▲ 미련

▲ 나뭇잎이 떨어져서

▲ 꿈속의 나오미

▲ 빗속의 여인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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