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어느 길거리 여인의 고독한 목소리에…

유곽을 걸으며

임영태

사창가, 창녀촌, 홍등가, 유곽, 모두 같은 곳을 이르는 말이다. 매음굴이라는 좀 독한 표현도 있고, 언론에서는 보통 성매매업소라는 행정적인 용어를 쓴다. 이 중에서 내가 애용(?)하는 말은 유곽이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이 단어를 처음 보았지 싶다. 그래서인가, 이 단어는 나에게 모종의 문학적 향취를 느끼게 한다. 어쩌다 슬픈 길에 들어선 누이들의 외로움과 생의 고단함을 떠올려 주고, 보퉁이 하나 꼭 껴안고 밤열차에 오르는 시골 처자를 상상하게 한다.

시인 이성복도 그러했는지 <정든 유곽에서>라는 시를 비롯해 그의 시편들 곳곳에 유곽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내가 애송하는 <그날>이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애잔한 구절도 있다.

……그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돕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내가 유소년 시절을 보낸 경기도 전곡에도 유곽이 있었다. 면소재지에 불과한 시골 마을에 유곽이 있었던 것은 그 지역이 전방이어서 군부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첫 장편소설의 배경을 내 고향 전곡으로 설정하면서 소설 도입부에 이런 구절을 집어넣기도 했다.

철길 바로 아래의 동네는 그 중에서도 가장 늦도록 불빛이 남았다. 그곳의 골목들은 좁고 으슥했다. 짙은 화장의 여자들이 붉은 등이 켜진 가게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깨알 같은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술 취한 사내들이나 군복의 청년들이 쭈뼛거리며 그 앞으로 다가서면 여자들은 화다닥 일어나 달려갔다. 그리곤 부축하듯 어깨를 끌어안고 그 깊은 골목으로 가뭇없이 사라진다. 아직 초저녁이면 아이들은 철길 위에서 그런 장면을 훔쳐보며 키들거렸다.

이 소설을 쓸 때에 모처럼 전곡에 찾아갔다. 처음으로 철길 아래 그 유곽에도 들어가 볼 생각도 했다. 등장인물 중에 창녀도 있고 하여 리얼한 취재를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의정부에서 추억의 기차를 타고 내려가며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전곡의 곳곳을 다 알지만 한 번도 발길이 닿지 않았던 미로 같은 골목이다.

기대하며 그 거리로 들어섰더니 이런,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3년 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그때가 91년도다. 3년 전이라면 88년, 팔팔올림픽 때 없어졌는가 보았다. 올림픽에 찾아올 외국 손님들이 그 시골 마을까지 올 리는 없겠으나 전국적으로 도시 환경을 정비하는 가운데 덩달아 된서리를 맞았지 싶다.

연유야 어찌되었건 낭패였고, 낭패 이전에 아쉬웠다. 아, 그때 그 누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중년 여성이 돼 있을 옛 창녀들의 안부가 공연히 궁금하면서 세월의 비감마저 올라오는 것이어서 나는 금방 떠나지 못하고 한참 그 거리에 서 있었다. 거 참, 주머니에 돈도 두둑이 마련해 왔는데……

유곽이 그대로 있어 어느 아가씨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면, 그 일은 놔두고 밤새 이야기나 나누고 싶었다. 그랬다면 나는 진상 손님이 되었을 것이다. 나중에 어디에선가 들었는데, 창녀에게는 그런 손님이 왕재수 손님이란다. 하기야 그럴 것이다. 빨리 하고 나가야 좋은 손님이지, 그 일 안 하는 것을 무슨 은혜라도 베풀듯 하며 대신 이야기나 나누자고 하면, 나 같아도 흘러 흘러 그곳까지 이른 사연을 낯모르는 손님에게 털어놓을 마음 전혀 없을 것이다.

지금 사는 이곳에도 유곽이 있다. 우리 집은 역전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이사 와서 어느 날 밤 담배를 사러 가는데 한 여인이 다가서며 말을 건넸다. 말보다도 여인의 분위기로 먼저 알았다. 아, 여기에도 이런 곳이? 한순간 반갑고 설렜음을 고백한다.

밤에 글 쓰는 일이 많다 보니 자정 전후로 담배나 막걸리 등을 사러 편의점에 자주 간다. 그러면 어김없이 여인들이 다가온다. 고향에서는 직접 일 치루는 젊은 아가씨들이 다가섰는데, 여기에서 나를 잡는 여인들은 오륙십대의 늙은 여인들, 이른바 펨푸들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 10시에서 새벽 3시경까지 늘 그 거리에서 서성인다.

지금은 여인들이 나를 알아본다. 다가오다가 나인 것을 확인하고는 “에이” 하고 돌아선다. 괜히 미안해진다. 그 중에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한 여인은 가끔 우체국 계단턱에 혼자 앉아 소주를 마신다.

어느 날, 그 여인이 소주병을 한손에 들고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지겨워”
그렇게 고독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온몸에 지겨움이 흘렀다. 가슴이 온통 미어져 여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지겨워’라는 말. 단내 쓴내 다 토해낸 것 같은 한 마디에 여인의 일생이 압축돼 있습니다. 벼락이 내려치듯 전율을 일으키게 하네요. 쓸쓸한 충격입니다. 여인의 곁에 있던 작가의 가슴이 미어졌다지요. 소설가 임영태.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대단히 여리고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임이 느껴집니다. 그의 아내 이서인 역시 두 권의 소설과 시집 한 권을 펴낸 문학가입니다. 남편의 표현에 의하면 “요란한 수사 하나 없이 단숨에 생의 진통을 거슬러 슬픔의 원형과 만날 줄 아는 시인”인데요. 읽는 이를 “내밀한 아픔 속으로 초대하여 한 영혼의 순정과, 비애와, 따뜻한 구원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더불어 영혼의 정화 의식을 치르게 하는” 작품을 쓴다지요.
그녀의 바탕화면

이서인

바탕이
하얗네요
화장(火葬)을 끝냈어요
동구밖 동동
발 구르지 않겠대요
슬픔 더 속속
가랑이 벌리겠대요
배실배실 웃기만 하고
이유를 말하지 않아요
그녀는 거울을 버렸어요

▲ 이정희 – 그대 생각
▲ 김세화 & 권태수 – 작은 연인들
▲ 전영 – 어디쯤 가고 있을까
▲ 김태정 – 백지로 보낸 편지
▲ 이치현과 벗님들 – 사랑의 슬픔
▲ 전영록 – 애심
▲ 딕 훼밀리 – 흰구름 먹구름

마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주부생활ㆍ일요신문을 거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으로 일했고요.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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