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혼자 몰래 보고 가슴 속에 묻은 비경


“태백산맥이 들에 내렸다가 예안(禮安) 강가에서 우뚝하게 맺혔다. 밖에서 바라보면 다만 흙 멧부리 두어 송이뿐이다. 그러나 강을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 만 길이나 높아서 험하고 기이한 것이 형용할 수가 없다.”

팔도를 유람하고 ‘택리지’를 쓴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봉화의 청량산(870m)을 두고 이른 말입니다. 맑을 청(淸)과 서늘할 량(凉).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웅장한 절벽을 끼고 흐르는 풍경에 딱 들어맞는 작명입니다. 퇴계 선생이 세상에 알리기를 꺼려한 보물로서 혼자 가서 몰래 보고 가슴 속에 묻었다지요. 12개의 봉우리와 8개의 굴, 4개의 약수터와 20여 개의 사찰을 거느리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산. 이곳에 신라 문무왕 3년(663)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 청량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찰 가운데 가장 가파른 절경 산록에 지어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청량사는 자칭 ‘땡중’이었던 대학 선배가 한동안 적을 뒀던 곳입니다. 1970~80년대 ‘적음(寂音) 선사’로 불리던 그는 툭하면 서울에 올라와 후배들을 괴롭히다가(?) 어느 날 훌쩍 말도 없이 내려가곤 했습니다. 아름다운 여인, 아름다운 술 한 병, 아름다운 시 한 수 중에서 하나만 고르라고 했을 때 거침없이 ‘술’을 선택한 고은 시인과 많이 닮았습니다. 술이 밥이고 밥이 안주인 것도 비슷합니다. 적음은 특히 막걸리를 사랑했지요. 수많은 일화를 남긴 채 지난 해 입적했는데요. 생전의 그로부터 절집의 산세가 험해 왕래가 너무 불편하다고 투덜대는 소리를 자주 들었습니다.


▲ 청량산 청량사. 


▲ 90년대 후반 석지현 스님이 청량사 경내에 앉힌 찻집.
주마등 등 사찰의 전통 등(燈)이 볼거리.

봉화에서의 둘째 날. 청량산에 눈도장을 찍고 돌아온 후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술상 앞에 앉았습니다. 상당히 피곤했음에도 지난 밤의 흥이 되살아나는 듯해 견딜 만했지요. 벗들의 정감 어린 이야기 소리에 한 잔, 오래된 LP판의 복고 사운드에 두 잔, 좋은 비는 때맞춰 내린다는 두보의 시구를 확인시키듯 귀를 즐겁게 하는 빗방울 독주에 석 잔…. 서서히 영혼을 잠식해 들어오는 취기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이렇게 좋은 밤이라니!

다음 날 아침 안동의 농암종택(聾巖宗宅)으로 향했습니다. 조선 연산군 시대의 목민관이며 시인이었던 농암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종택인 이곳은 수천 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고택이 줄지어 있습니다. 전면에 낙동강 줄기가 굽이치는 전망이 뛰어난 곳입니다. 농암은 부모가 돌아가자 왕과 동료의 만류를 뿌리치고 낙향합니다. 집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효빈가(效嚬歌)’를 지었다지요.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말 뿐이오 간 사람 없어
전원이 황폐해지니 아니 가고 어찌할꼬
초당에 청풍명월이 나며 들며 기다리나니 

이젠 나도 떠나야 할 시간이 됐습니다. 영주역에서 벗들과 작별하고 청량리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한동안 ‘가슴 짠하게’ 지낼 것 같다는 봉화 시인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헤어진 지 며칠 안 돼 ‘보고 싶다’는 문자가 날라왔습니다. 그가 내 손에 쥐어준 기차표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데…. 


▲ 농암 이현보.

 



▲ 농암종택과 그 앞을 흐르는 낙동강.

마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국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주부생활ㆍ일요신문을 거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으로 일했고요.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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