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나윤선 매력의 재해석…15분 기립박수 의미는

사람은 저마다 순도와 밀도가 다른 색깔과 향기, 울림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에 ‘이야기’를 얹힐 때 소통이 발생하고 감동을 일으키는데요. 놀라운 건 그 감동이 정화(淨化)라는 필터를 거치면 삶의 새로운 동력원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이런 과정을 거쳐 생활의 힘을 얻는 동시에 자신의 발전을 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토리’의 형성을 통해 개인 고유의 브랜드를 창출하고 부가가치를 높이지요.

“둠바다바답! 둠바다바답! 둠바다바데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스캣과 목구멍을 긁는 소리가 인상적인 재즈 가수 나윤선(44)이 그러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빌리 할리데이나 사라 본, 엘라 핏제럴드 같은 파워 있는 재즈 디바가 될 수 없다는 음악적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 가수입니다. 때문에 자신의 장점인 고음의 가치를 극대화시킨 노래를 주로 불러왔습니다. 27세라는 젊지 않은(?) 나이에 프랑스로 날아가 재즈의 망망대해에 몸을 던졌던 그가 오늘날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힘은 ‘자기 색깔의 긍정적 수용’ 을 거친 스토리 텔링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지요.

 

최근 나윤선이 8집 앨범 ‘렌토(Lento)’를 들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 12곡(한국 발매 앨범 기준. 외국은 ‘초우’가 빠져 11곡)이 수록된 새 앨범은 지난 3월 13일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 발매된 뒤 유럽과 북미 등 35개국에서 일제히 선보였는데요. 프랑스와 독일, 스위스, 벨기에, 노르웨이 재즈 차트에서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특히 프랑스 아마존닷컴 음반 순위는 현재 1․2․3위 모두를 나윤선 앨범이 차지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새 음반은 화려하면서 다이내믹한 전작의 흐름과 달리 정적(靜寂)의 한가운데서 긴장감을 이어갑니다. 더욱 강화된 흡인력으로 듣는 이의 몰입도를 높여주지요. 느린 박자에서도 그루브(Groove, 흥)가 전달되고 단출한 악기 구성임에도 오케스트라 같은 풍부한 음률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단 한 번의 녹음으로 모든 작업을 끝내는 ‘원 테이크(One Take)’ 방식으로 제작됐다는 겁니다. 연주자들의 사전 조율이 없었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이 태어난 건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타이틀 곡 ‘Lento’는 러시아 작곡가 스크라빈의 음악으로 느리게 흐르는 우아한 슬픔이 인상적입니다. 나윤선의 자작곡인 ‘Lament’는 재즈로는 드물게 절정으로 치닫다가 카타르시스를 남기며 마감되고요. 록 밴드 나인인치네일스의 곡인 ‘Hurt’에 이르면 눈부신 쓸쓸함에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조니 캐시의 컨트리 송 ‘Ghost riders in the sky’, 우리 노래 ‘초우’와 ‘아리랑’도 재해석돼 있습니다. 비감하고 처연한 노래가 많은 까닭에 수록곡을 다 듣고 나면 애잔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습니다.

▲ Youn Sun Nah – Lento

▲ Youn Sun Nah – Empty Dream

▲ Youn Sun Nah – Lament  

“이번 음반에선 정적인 음악에 대한 불안감, 성공에 대한 강박을 모두 없앴어요. 그래서 제 음반은 계획된 프로덕션이 아니라, 순간의 기록일 뿐이죠. 음반을 만들면서 콘셉트를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제 스스로 더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타를 넘어 진정한 자유인으로 거듭나는 듯한 나윤선. 프랑스 유력지 ‘르 피가로’는 ‘나윤선의 노래는 때로는 광기 어리고, 언제든 상식을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만세 삼창을 보낸다’는 찬사를 바쳤습니다. 최근 국내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보면 이제 그녀는 재즈에 관한 한 독보적 성찰에 도달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힘을 굉장히 많이 뺐어요. 마치 생활 속의 음악을 선보였다고 할까요? 제가 1년에 100번 정도 무대에 오르는데, 그렇게 반복적이고 바쁘게 움직이다보면 저를 그냥 보여줄 수밖에 없어요.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화장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매일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노래할 때도 많죠. 그런데 그게 재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관객과 진실로 소통할 수 있거든요.”


▲ 3월 25일 나윤선의 샤틀레 극장 공연을 보도한 렉스프레스.

프랑스 파리 시각으로 지난 3월 25일 밤 8시, 루브르 박물관과 노트르담 대성당 중간의 샤틀레 극장(Theatre du Chatelet)에서는 나윤선의 단독 무대가 마련됐습니다. 이곳은 1862년 지어진 오페라 하우스로 4월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오는 6월엔 소프라노 조수미의 독창회가 열리는 프랑스 최고의 무대인데요. 1650개 좌석을 관객으로 꽉 채운 이날 그녀의 공연을 본 프랑스 시사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압도적 공연에 감동한 관객들은 15분간 기립박수를 쳤다’는 보도와 함께 ‘나윤선은 이제 현대 재즈 보컬의 상징’이라는 상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크리스티앙 토비라 프랑스 법무장관이 찾아와 눈물을 흘렸고 유명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인 베르트랑 타베르니에는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을 보았다. 나윤선의 음악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지요.

음과 음 사이를 뚝 떨어졌다 솟구쳐오르고 때로는 휘어지면서 넘나드는 그녀의 보컬. 노파와 여인, 소녀가 교대로 갈마드는 변화무쌍한 목소리를 들으면 왜 유럽이 그토록 그녀를 사랑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한국이 낳은 ‘마녀이자 성녀’ 나윤선은 이달 조국을 찾아 ‘아리랑’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전국투어 공연을 펼칩니다. 4월 14일 경기도문화의전당을 시작으로 16일 강원도 백령아트센터, 17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각각 공연한다고 합니다. 그녀의 라이브, 정말 보고 싶네요. (*** 2011. 12.13 칼럼 ‘재즈 가수 나윤선의 매력’ 참조)

▲ Youn Sun Nah – Hurt

▲ Youn Sun Nah – 초우

▲ Youn Sun Nah – Momento Magico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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