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小鹿島). 어린 사슴을 닮아 예쁜 섬. 요즈음은 다리가 놓여 있어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으나 바닷길밖에 없던 옛날에는 통행이 쉽지 않았습니다. 설사 배를 타고 간다 해도 섬 전체가 한센병(나병) 환자를 위한 병원 지역이었던 시절에는 아무나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지요.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된 게 1988년. 둘레 14km의 작은 섬 소록도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때부터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환자들이 거주하는 마을은 출입이 제한돼 있지만요.

한센병 환자들은 오래 전부터 하늘이 내린 천형(天刑)을 받은 죄인으로 간주돼 왔습니다. 구약 성서마저도 ‘부정한 자’로 낙인찍었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음 앞에 오는 죽음’이라 해서 그들을 격리시켰습니다. 환자들은 하늘로부터 버림받고 다시 지상에서 버림받아야 하는 2중의 고통을 겪었지요.

여기 소록도 환자들도 인간 대접을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옛날 전국 각지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은 포승줄에 묶인 채 ‘나는 안 들어간다’고 울부짖었다지요. 일부는 섬에서 몇 백 미터 거리인 녹동항으로 헤엄쳐 나오다가 동네 청년들에게 잡혀 다시 끌려가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탈출하다 죽고, 신세를 비관해 죽은 환자 수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록도 진입은 솔밭 사이로 잘 꾸며진 나무 데크 길을 걷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길 초입에 탄식의 장소라는 뜻의 수탄장(愁嘆場) 푯말이 세워져 있습니다. 1950~70년 직원 지대와 병사(病舍) 지대의 경계선이었던 곳으로 당시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고 합니다. 서로 떨어져 살아야 했던 환자와 자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눈물의 상봉 장소였지요. 미감 아동과 부모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 선 채 눈으로만 혈육의 정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 수탄장의 과거. 환자와 자녀들이 마주보고 서 있는 안타까운 모습.  


▲ 나무 데크 길에서 한 컷. 멀리 환자 마을이 보인다.

오른편의 해변을 끼고 천천히 걸어 20여 분. 국립소록도병원이라는 현판이 붙은 건물이 보입니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중앙공원이 나오는데요. 공원 입구에 일제 시대 가혹한 학대를 받았던 환자들의 고통이 전해지는 시설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붉은 벽돌로 높은 담을 쌓아 환자들을 감금하고 체벌했으며 출감 때는 예외 없이 정관 절제 수술을 했던 감금실, 시체를 해부했던 검시실이 당시의 슬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고요. 한센병 자료관에는 오래 된 흑백 사진들과 환자들이 사용하던 옷, 생활 도구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조경이 아름다운 중앙공원은 종려, 편백, 차나무, 능수버들, 등나무, 매화와 함께 히말라야 삼목, 동백, 팔손이, 치자, 피라칸다 등 500여 종의 식물을 보듬고 있습니다. 나환자 시인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하나이젠키치 원장의 창덕비,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구라탑 등 환자들의 애환과 박애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기념물들도 산재합니다. 특히 벨기에 의사와 간호사들의 노고를 기리는 ‘Belgium Damien Foundation 공적비’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하와이 몰로카이 섬의 ‘문둥이 성자’ 다미안 신부(1840~1889)의 위대한 사랑이 여기까지 전염(?)됐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네요. 


▲ 감금실 전경.






▲ 소록도 중앙공원의 다양한 풍경들.

“1885년 어느 날 밤 다미안은 펄펄 끓는 목욕물을 맨발에 쏟고 말았다. 아차 하는 순간의 실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끓는 물에 덴 발이 전혀 아프지가 않았다. 감각의 상실은 곧 한센병에 걸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하늘이 무너질 일이지만 그는 기뻐하며 하늘을 우러러봤다. 마침내 하느님의 은총이 자신에게 내렸노라고 감격해 했다.”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을 자신의 몸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주님, 제게도 나병을 허락하시어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던 다미안 신부가 드디어 병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다음 날 아침 성당을 찾은 환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언제나 ‘나의 형제들이여…’로 말문을 열던 그가 느릿느릿,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우리 문둥병자들은…’ 하고 첫 마디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의 의미를 깨달은 환자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 몰로카이 섬으로 향한 1873년,
당시 33세의 다미안 신부. 

▲ 1889년 임종을 앞둔 다미안 신부. 
다미안 신부는 벨기에 태생으로 33살 때 몰로카이 섬에 자원해 들어가 사망할 때까지 800명의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습니다. 잠 잘 곳이 없는 사람들의 집을 지어주었고 손가락이 없는 환자들의 고름을 직접 짜고 상처를 감싸주었으며 삶을 포기한 사람에게는 재생의 은혜를 가르쳤던 진정한 의인입니다. 지난 2009년 10월 11일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성인 반열에 올랐지요. 한센병은 물론 에이즈와 같은 난치병을 앓고 있는 이들과 버려진 아기, 억압받는 여성, 차별받는 소수공동체 등 소외당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성인으로 선포된 겁니다. 앞서 2005년에는 벨기에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한센병은 특효약 DDS로 인해 완치가 가능해졌습니다. 현재 소록도에는 17개 마을에 570여 명의 환자가 살고 있지만 양성 환자는 없다고 합니다. 병이 사실상 소멸 단계로 접어들면서 환자들 평균 연령이 73세로 높아졌다지요.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환자 마을을 향해 짧지만 겸허하게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190명의 병원 직원과 20여 명의 자원 봉사자들의 보살핌이 있는 한 그렇게 외롭지는 않겠지요.”

녹동항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30여 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때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지요. 빛나는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저 물비늘들이 그들의 영혼일지 모른다고. 그들은 지금까지 죽어도 죽지 않았고 언제나 ‘슬픈 오늘’을 살아왔다고….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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