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지금 이 순간, 바로 옆 사람이 중요한 이유


옛날 어떤 왕이 이런 생각을 했다. 모든 일을 할 때 언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알 수 있다면, 또 어떤 사람의 진언을 듣는 것이 좋고 어떤 사람을 피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있다면, 그리고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해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왕은 전국에 포고를 내려 이 방법을 말해 주는 사람에게는 막대한 상을 내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많은 학자와 현인들이 와서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왕의 마음에 드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때문에 왕은 그 어떤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상도 내리지 않았다. 마침내 왕은 어질기로 소문 난 한 은자(隱者)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이 은자는 숲속에 살고 있었으며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 찾아와야만 만났으므로 왕은 남루한 옷을 입고 경호원도 없이 혼자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왕이 다가올 때 은자는 집 앞에서 채소밭을 일구고 있었다. 그는 왕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을 뿐 여전히 밭만 갈았다. 허약한 체구의 은자는 쟁기로 흙을 팔 때마다 힘이 들어 깊이 숨을 들이쉬곤 했다. 왕이 가까이 다가가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은자는 왕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 기울였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손에 침을 바르고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몹시 피곤하신 것 같군요. 그 쟁기를 잠시 빌려 주십시오. 제가 대신 땅을 파겠습니다.”
“고맙소.” 

노인은 쟁기를 왕에게 주고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 이랑쯤 판 왕은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되풀이했다. 은자는 이번에도 아무 대답 없이 일어나더니 쟁기를 달라고 손을 뻗쳤다. 왕은 쟁기를 건네지 않고 계속 땅을 팠다. 두 시간이 지나 해가 나무 저편으로 기울기 시작했을 때야 왕은 쟁기를 땅에 꽂고 허리를 폈다. 그때 누군가 숲속에서 이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왕이 보니 턱수염을 기른 사나이였는데 배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나이는 왕의 옆에 이르자 퍽 하고 쓰러졌다. 왕은 은자와 함께 그 사나이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닦아 주었다. 붕대를 감싸주고 물을 마시게 하고서는 침대에 뉘었다. 사나이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왕은 피로에 지쳐 문가에 앉아 잠시 쉬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짧은 여름밤이 그렇게 지났다.

이튿날 눈을 떴을 때 왕은 자기가 어디 있는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침대에 누워 예리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턱수염의 사나이가 누구인지도 잠시 동안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턱수염의 사나이가 다짜고짜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왕은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오. 그러니 아무 것도 용서할 것이 없소.” 그러자 사나이가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당신은 모르고 있지만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형이 당신에게 사형당하고 재산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 원한을 갚으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적인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은자를 찾아나섰다는 것을 알고, 돌아가는 길에 매복했다가 당신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꼬박 하루 동안 당신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고 은신처에서 나오다가 당신의 경호원과 마주치게 됐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정체가 폭로되어 부상을 입고 겨우 도망칠 수 있었던 게지요. 저는 당신을 죽이려 했으나 당신은 저를 살렸습니다. 그러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왕은 이토록 쉽게 적과 화해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뻐 그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그 형의 재산을 되돌려 주고 다시 하인과 의사까지 그에게 보내기로 약속했다. 사나이와 작별한 왕은 은자가 어디 있는지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곳을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더 자기 의문을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은자는 들에 나가 전날 일군 밭에 씨를 뿌리고 있었다. 왕은 곁으로 가서 말을 걸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러했다.

“현명하신 은자님, 다시는 부탁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제발 그 질문에 답해 주십시오.”
“대답은 이미 끝났을 텐데요?”
“아니, 무슨 말씀인지요? 어떤 대답이란 말씀입니까?”
“아직 모르고 있다는 말이오? 만일 당신이 어제 나를 동정하여 땅을 갈아주지 않고 그냥 돌아갔으면 틀림없이 그 사나이가 당신을 습격했을 것이오. 그러면 당신은 나한테 남아 있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 것이오. 그러므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쟁기로 땅을 파고 있던 순간이고, 또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였던 것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이란 나를 위해 봉사를 해 준 것이오.”

은자는 숨을 가다듬었다.

“한편 그 사나이가 뛰어왔을 때 가장 적당한 시기는 그를 치료해 준 시간으로, 만일 당신이 그 사나이에게 붕대를 감아주지 않았다면 그는 당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오. 그러므로 가장 필요한 사람은 그 사나이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당신이 그에게 한 일인 것이오. 그러니 이 사실을 가슴에 명심해 두도록 하십시오.” 

잠시 후 은자는 허리를 펴며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시기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오. 왜 그것이 가장 중요한가 하면, 어떤 경우에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지금밖에 없기 때문이오. 또 가장 중요한 인물이란 지금 관계하고 있는 사람이오. 왜냐하면 앞으로 어떤 사람과 관계를 갖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이란 남을 위해 착한 일을 해주는 것이오. 인간은 오직 그러기 위해서, 즉 인간은 선을 행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오.”

이 이야기는 대문호 톨스토이가 인생의 후반기에 썼던 많은 우화 중 한 편입니다. 제목은 ‘세 가지 의문’으로 길이는 짧지만 깊은 지혜가 담겨 있지요. 이제 곧 음력 새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과 가장 중요한 사람, 가장 중요한 일에 올인하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 법륜스님 ‘즉문즉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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