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9개월에 뇌척수막염이라는 병을 앓고 난 후 시각을 잃었던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는 저서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나는 촉감만으로도 나뭇잎 하나하나의 섬세한 균형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봄이면 동면에서 깨어나는 자연의 첫 징조, 새순이라도 만져질까 살며시 나뭇가지를 쓰다듬어 봅니다. 아주 재수가 좋으면 한껏 노래하는 새의 행복한 전율을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손으로 느끼는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하는 갈망에 사로잡힙니다. 촉감으로도 그렇게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데,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래서 꼭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이 제일 보고 싶은지 생각해봅니다.

첫날은 친절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기만 했던 내게, 삶의 가장 깊숙한 수로를 전해준 책들을 보고 싶습니다. 오후에는 오랫동안 숲 속을 거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겠습니다. 찬란한 노을을 볼 수 있다면, 그날 밤 아마 나는 잠을 자지 못할 겁니다. 둘째 날은 새벽에 일어나 밤이 낮으로 변하는 기적의 시간을 지켜보겠습니다.”

앞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를 느끼게 만드는 글인데요. 이제는 책이든 모니터든 조금만 오래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시야가 흐릿해집니다. 자연스레 눈을 감게 되지요. 그리고 생각해봅니다. 시력을 잃거나 생명이 다한 이후의 세계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고요. 온통 검은 천을 휘두른 듯한 배경에 한 줄기 흰 생각이 떴다 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잭슨 폴록의 충동적 붓터치가 마음의 캔버스를 휘젓기도 합니다. 답답한 마음에 곧 눈을 뜨면 헬렌 켈러가 그토록 원했던 ‘기적의 빛’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요.

빛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인생과 예술의 진정한 고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들은 빛의 방향과 강도, 색조에 의해 만물의 형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대상 자체보다 빛을 더 중요시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그림을 그릴 때 같은 장소를 수십 번 찾아 결정적 순간을 노렸던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에게서도 발견됩니다. 그들 역시 빛의 표정을 이해함으로써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의 본질을 낚아채려 했습니다. 이와 관련, 영국 화가 컨스터블(Constable)의 아래 발언은 우리의 삶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어느 하루도 그 다음 하루와 닮지 않았으며 어느 시간도 그 다음 시간과 닮지 않았다.”
“풀밭의 초록빛이 뛰어난 것은 그것이 여러 가지 다양한 초록 색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점점 다채로워지는 이 가을의 빛, 빛, 빛. 서울 부암동 풍경을 담은 김선미 시인의 고즈넉한 ‘빛 그림’을 감상하면서 ‘마음의 빛’을 곱게 채색하는 건 어떨런지요.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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