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다가옵니다. 인디언들은 이달을 검정 나비의 달(체로키 족), 사슴이 땅을 파는 달(오마하 족), 풀이 마르는 달(수우 족), 춤추는 달(클라마트 족), 아주 기분 좋은 달(모호크 족)이라고 불렀습니다. 숫자로 시간을 쪼갠 달력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에 시간을 맞춘 그들만의 달력을 만든 셈입니다. 본디 그 자체로 존재하는 만물을 존중하는 자연관이 반영돼 있고요. 인간의 ‘마음 움직임’에 대해서도 대단히 친밀하게 반응했음을 보여줍니다. 하늘과 땅의 울림, 비와 바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과 함께 조화롭게 살고자 했던 웅숭깊은 지혜의 소산이지요.

구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 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 Claudio Arrau plays Chopin - Waltz No.10 in B minor, Op. 69... with images of art by Karen Hollingsworth born in 1955, living in Atlanta, Ga.

마음의 운용에 있어 어디에도 걸림이 없었던 자연인으로 야보 도천(冶父 道川) 선사가 있습니다.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생몰 연대가 뚜렷하지 않은데요. 그가 남긴 게송(불교의 가르침을 함축하여 나타내는 운문체의 짧은 시구)은 선(禪)의 극치를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간결하면서도 한 번에 내려치는 듯한 활구(活句)가 백미로서 여여(如如)와 무애(無碍)의 경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竹影掃階塵不動 죽영소계진부동
月輪穿沼水無痕 월륜천소수무흔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이 연못에 들어도 물에는 흔적 없네

-『금강경오가해 金剛經五家解』에서

먼지 일어나지 않는 뜰, 파문 없는 연못의 물…. 시간을 정지시킨 듯 적음(寂音)의 현장을 포착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섬광처럼 가슴을 감응시키는 에너지의 파장이 느껴집니다. 인위적 관념의 개입 없는 자연스러움에서 오는 공명의 힘이겠지요. 세상을 그저 눈으로만 보지 않고 온 몸으로 바라본 것처럼 그야말로 거리낌이 없습니다.  

옛날 어떤 수좌(마음 닦는 스님)가 선(禪)의 본체를 잡으려 애를 썼다.
선의 본체는 무심(無心).
수좌가 하루는 장작을 패다가 무심이 눈앞 나뭇가지 위에 앉아 알랑거리는 꼴을 발견했다.
거동을 살피던 수좌는 얼른 도끼를 던졌다.
영낙없이 찍혔으리라 생각하고 무심이 앉았던 곳을 바라보았으나
그 놈은 벌써 옆 가지로 옮겨 앉아서 손뼉을 치며 웃고 있었다.
수좌는 단단히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날쌔게 도끼를 집어던졌으나
이번에도 빗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계속된 실패, 실패…
무심은 수좌의 마음을 앞질러 읽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런데
마침내 무심이 도끼에 걸려들었다.
수좌가 모든 걸 포기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장작을 패고 있는 사이에
도끼 자루가 빠져 무심의 정수리를 찍고 만 것.
그야말로 무심한 도끼질에
무심이 수좌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스즈키 다이세츠 ‘선이란 무엇인가’에서


▲ 패티김 - 9월의 노래 & 초우

안도현의 시 한 편 더 올립니다. 도서출판 ‘작가’가 선정한 ‘2012 오늘의 시’ 최다추천 작품이지요. 소소한 일상. 9월은 오는데, 나도 무심으로 살고 싶습니다.

일기

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 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저녁이 부엌으로 사무치게 왔으나 불빛 죽이고 두어 가지 찬에다 밥을 먹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 말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 『시인수첩』2011년 가을호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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